1995년 국영기업 유코스를 인수해 세계적 정유회사로 일궈내며 자수성가한 호도로프스키 회장을 구속한 것은 크렘린의 정치적 입김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2월 총선과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호도로프스키 회장을 중심으로 한 ‘올리가르히’(과두재벌) 세력의 정치개입을 차단하려는 사전 포석이라는 것이다.
유코스측은 혐의 내용을 즉각 부인하며 반발하고 있다.
▽정치적 야심이 진짜 이유?=호도로프스키 회장은 7월에도 검찰에 소환됐으며 측근인 플라톤 레베데프 메나테프은행장이 구속되는 등 크렘린의 압박을 받아왔다. 공산당 등 야당에 자금지원을 해 온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렘린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호도로프스키 회장은 우파연합(SPS) 등에 대한 자금지원을 확대했다. 그가 엑손모빌 등 외국기업과 유코스 지분 매각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모스크바 정계에서는 ‘푸틴 이후’를 노리고 본격적으로 정치자금을 마련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개인 재산 80억달러(약 9조4800억원)의 호도로프스키 회장은 세계 26번째 부자. 그는 6월 40세 생일을 맞아 “지금까지 돈은 벌 만큼 벌었으니 앞으로는 쓰겠다”고 측근들에게 말한 것이 화제를 모았고 크렘린은 이를 ‘정치참여’ 선언으로 해석했다.
호도로프스키는 이후 콧수염을 깎는 등 이미지 변화를 시도하면서 유코스의 기업 홍보활동을 강화했고, 이때부터 유코스에 대한 검찰의 압박이 시작됐다.
▽러시아 경제에 어떤 영향 미칠까=주말이어서 러시아 주식시장의 동요는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유코스 사태는 99년 이후 성장세를 이어온 러시아 경제에 불안 요인이 될 전망이다. 최대기업 총수가 정치적 이유로 구속된 것은 기업 활동의 위축은 물론 러시아 시장에 대한 외국자본의 불안감을 가중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코스는 러시아 대기업으로는 드물게 투명하고 합리적인 경영으로 서방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어왔다.
11월 시브네프티를 합병해 세계 4대 석유메이저로 도약하겠다는 유코스의 야심찬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될 전망이다. 러시아 재계 모임인 기업산업가연맹은 즉각 이번 사태에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여전히 정치권력이 대기업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집권 후에도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로고바스 회장과 블라디미르 구신스키 모스트그룹 회장 등 크렘린의 눈 밖에 난 대기업 총수들이 잇따라 국외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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