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이곳]EU,공식언어만 20개 ‘新바벨탑’

  • 입력 2003년 10월 27일 18시 43분


‘신(新) 바벨탑의 탄생?’

내년 유럽연합(EU) 확대에 따라 EU 공식언어가 11개에서 20개로 대폭 늘면서 통역 및 번역 문제가 골칫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통역이나 번역을 해야 하는 언어 조합을 모두 따지면 380개 경우에 달해 자칫 ‘통·번역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각종 EU 기구에서 일하는 통·번역사 4000여명에 들어가는 비용만 연간 7억6000만유로(약 1조640억원)에 이른다. EU 전체 예산의 1%에는 못 미치지만 행정비용의 40%를 차지할 정도다.

EU는 최근 몇 년간 꾸준히 통·번역 인력 및 시설을 확충해 왔다. 그러나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메이저’ 언어가 아닌 ‘마이너’ 언어의 통·번역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핀란드어 헝가리어 에스토니아어(이상 우랄-알타이어족) 등 비(非)인도-유럽어족 언어는 특히 어려움이 많다.

EU 당국은 별수 없이 핀란드어→영어→헝가리어 식으로 다중 번역을 시도하고 있지만 중역(重譯)을 하다보면 오역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경제성과 효율성을 고려해 공식언어를 사용 빈도가 높은 언어로 제한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번번이 수포로 돌아가고 있다. 어떤 언어를 공식언어로 결정할지를 두고 다툼이 치열할뿐더러 언어 장벽이 시민들의 EU에 대한 접근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EU는 회원국간 상호 이해도를 높인다는 취지로 각종 언어교육을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 나의 가치만큼 남의 가치도 소중하다는 ‘공존과 번영’ 정신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감수해야 할 불편 또한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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