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11월 3일. 대공황을 극복하고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32대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다. 미 헌정사상 유일한 4선의 고지를 다지는 순간이었다.
휠체어에서 일어나 “내 앞에서 다시는 안 된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 소리치던 영화 ‘진주만’에서의 루스벨트의 모습은 지도자의 용기와 리더십을 상징하는 삽화로 곧잘 인용된다. 그는 ‘여우와 같은 사자’였으며 ‘거상(巨商)과 같은 정치인’이라는 평을 듣는다.
루스벨트는 1200만명의 실업자가 길거리로 내몰리던 시기에 ‘새로운 판(뉴딜)’을 짬으로써 국난을 정면 돌파한 미국의 진정한 진보주의자였다. 그는 경제 피라미드의 바닥에 있는 ‘잊혀진 사람들’을 기억했다.
국가의 부(富)가 위에서 아래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린다는 주장에 대해 경제적 혜택이란 밑바닥에 닿기도 전에 너무 빨리 말라 버린다고 맞섰다. 노동자들은 “루스벨트가 백악관에 있었던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우리 사장이 ‘개××’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고 호응했다.
그는 항상 웃는 모습이었다. 오죽하면 일본 군부가 ‘Roosevelt’를 ‘Loosebelt(헐렁한 샅바)’라고 비아냥댔을까. 그와 절친했던 윈스턴 처칠은 그와의 만남을 “샴페인 뚜껑을 따는 것처럼 유쾌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사생활에 있어서 그는 그리 모범적이지 못했다.
미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존경받는 부인 엘리노어 루스벨트. 그녀는 죽는 날까지 그의 외도 때문에 괴로워했다. 그녀는 숨지면서 침대 곁에 ‘1918’이라고 써놓았다고 한다. 1918년은 그녀가 남편의 외도를 눈치챈 때다. 상대는 바로 그녀의 비서였다.
헌신적인 아내와 엄마였던 그녀가 여성운동과 인권운동에 뛰어들게 된 것은 남편의 외도가 결정적이었다고 역사가들은 지적한다. 루스벨트는 미국을 구한 대통령이었고, 또 본의 아니게 부인을 정치적으로 해방시킨 남편이기도 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