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떴다 보아라 안창남의 비행기, 내려다 보아라 엄복동의 자전거.”
‘경성(京城)의 한울’을 처음 날았던 대한(大韓) 남아 안창남. 그는 일제강점기 ‘날개로는 안창남, 수레로는 엄복동, 다리로는 현금녀’라는 유행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1930년대 단거리 육상을 휩쓸었던 현금녀는 수건을 입에 물고 뛰었던 ‘악바리 주법’의 원조.
안창남은 1922년 11월 일본제국비행협회가 개최한 도쿄∼오사카 왕복우편비행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이름을 날리게 된다. 곧바로 ‘안창남 고국방문후원회’가 결성되고 한달 뒤 여의도에서 역사적인 시범비행을 갖게 된다.
이날 여의도 일대에는 5만여명의 인파가 모여들었다. 나라 잃은 백성들은 모처럼 창공의 자유를 만끽했고, 21세의 식민지 청년은 한강을 넘어 동대문을 돌아 순종이 거처하는 창덕궁 상공에서 날개를 흔들며 경의를 표했다.
안창남은 다음해 ‘개벽’ 1월호에 이때의 감격을 이렇게 토했다. “내 경성의 한울! 어느 때고 내 몸을 따뜻이 안어 줄 내 경성의 한울! 그냥 가기가 섭섭하여 비행기를 틀어 독립문 위까지 떠가서…서대문 감옥에서도 머리 위에 뜬 것이 보였을 것이지만, 갇혀 있는 형제의 몇 사람이나 내 뜻과 내 몸을 보아 주었을는지….”
안창남은 한국인 최초의 비행사는 아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월로스 한인비행학교 교관이었던 한장호 이용선 이초 오림하 장병훈 이용근이 ‘천공을 비상한 효시’(독립신문)인 것이다.
월로스 비행학교는 도산 안창호의 뜻에 따라 임시정부의 노백린 군무총장이 설립했다.
일찍이 도산은 비행기를 구입해 독립운동의 ‘연락책’과 ‘선전책’으로 쓰고자 했다. “비행기로 민심(民心)을 격발하고 장래 국내의 대폭발을 일으키기 위함이라.”
대한의 항공사는 ‘항공독립운동사’나 다름없었고 그 맨 앞자리에 안창남이 있었다. 그의 뒤를 이어 수많은 ‘빨간 마후라’들이 명멸(明滅)했으며 최초의 여성 전투기비행사 권기옥도 그 후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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