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라미 EU 무역위원장은 4일(현지시간) 워싱턴의 유럽연구소에서 가진 오찬연설을 통해 “지난해 3월 미국이 일방적으로 부과한 유럽산 철강제품에 대한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해제하지 않을 경우 22억달러어치의 미국산 수출품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지난해 자국 철강업체들이 경쟁력 하락으로 부도위기를 맞자 EU 한국 일본 등 외국산 철강제품에 대해 24%의 보호관세를 부과했다.
미국의 세이프가드 발동은 철강수출국들의 제소로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조정기구로 넘겨져 올 7월 “조치 발동의 선결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WTO 협정에 위배된다”는 판정이 나왔다. 그러나 미 행정부는 즉각 상소, 보호관세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WTO가 다음주 초 상소심에서 EU의 손을 들어줄 것이 거의 확실해 미국이 궁지에 몰린 것. EU는 옷에서 귤에 이르기까지 미국산 제품을 보복 리스트에 올려놓고 다음달 초 발동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미 공화당 행정부는 내년 대선까지 세이프가드를 유지해 철강업체들이 포진한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웨스트버지니아주 등 3개 주의 표심을 긁어모아야 할 처지이지만 EU의 태도가 강경해 난처해졌다.
EU는 한술 더 떠 미국이 수출기업(FSC)에 제공하는 조세감면 조치도 폐지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문했다. FSC에 대한 감세혜택은 이미 WTO로부터 수출보조금으로 판정받아 2000년 11월까지 철폐해야 했지만 미국이 차일피일 미뤄왔다.
라미 위원장은 이날 “유럽은 충분히 인내심을 발휘해 왔다”며 “더 이상의 타협은 없다”고 ‘최후통첩’했다. EU 집행위는 이달 12일경 미국이 올해 말까지 감세조항을 없애지 않으면 40억달러어치의 미국산 수출품에 대해 5%의 보복관세를 발동하는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미 상하원은 현재 각각 FSC 조세감면법을 손질하고 있지만 기업과 유권자의 반발을 우려해 △단계적으로 감면혜택을 줄이거나 △수출기업뿐 아니라 제조업 전체에 감세혜택을 주는 쪽으로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미 상원 금융위원회 찰스 그래슬리 위원장은 “유럽이 미국의 정치적 현실을 전혀 모른다”고 불만을 터뜨렸지만 토머스 대슐리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는 “최대한 법안을 빨리 처리해야 한다”며 소속 의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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