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이라크 치안 악화를 이유로 자위대의 연내 파견에 소극적인 태도로 돌아서자 미국 행정부 일각에서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 것.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방일 기간 중 “일본의 입장을 이해한다”며 애써 대범한 태도를 보였지만 워싱턴의 고위관리들은 일본 에 대한 실망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폴 울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은 플로리다 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일본이 군사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만한 나라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며 파병 연기에 불쾌감을 드러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15일 보도했다.
이에 앞서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이 “자위대가 충분히 활동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파견하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고 한데 대해서도 백악관 고위관리는 “그 발언에 실망하고 있다”는 뜻을 비공식 경로를 통해 일본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럼즈펠드 장관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와의 회담에서 자위대 파병문제를 아예 거론하지 않은데 이어 기자회견에서도 “우리의 친구들이 그들에게 적절한 결정을 내릴 것으로 확신한다”며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데 그쳤다.
일본 언론은 울포위츠 부장관의 발언이 미국 행정부의 주류를 이룬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에 압력을 가하는 것처럼 비춰지지 않도록 공식석상에서는 파병 관련 언급을 피하면서도 실제로는 파병 시기를 최대한 앞당기도록 막후에서 압박하고 있다는 것.
미국은 이라크 공격을 앞장서 지지했던 일본이 파병하지 않으면 다른 나라를 설득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는 점에서 자위대의 조기 파병을 이끌어내는데 필사적이다.
한편 일본 정부는 15일 이라크 치안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육상자위대 등으로 구성된 정부조사단을 파병예정지인 이라크 남부 사마와 지역에 파견했다. 일본은 조사 시기에 제한을 두지 않을 방침이어서 자위대 연내 파병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하워드 베이커 주일 미국대사는 16일 럼즈펠드 장관과 함께 오키나와 미 해군기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일본은 자위대를 이라크에 보낼 것이며 아마도 금년 내에 파병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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