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밖을 향한 ‘골드러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지금 한국에선 ‘중국러시’가 한창이다. 싼 임금에다 노사분쟁을 피할 수 있다고 한국기업들이 중국 땅을 찾은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더욱 늘어나는 것 같다. 얼마 전 중국 성(省)들이 한국에 대규모 투자유치단을 보냈을 때 경기도의 400여개 기업이 중국으로 이전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유학바람까지 불어 베이징 왕징신청(望京新城) 지역엔 한국인 촌이 형성된 지 오래다.
▼누가 ‘만만디’라 했나 ▼
중국러시에 힘입어 한국 상품의 최대 수출국은 올 9월 미국(241억달러)에서 중국(243억달러)으로 바뀌었다. 무역도 수입보다 수출이 많다. 중국 땅에서 돈버는 재미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눈에는 당장 보이지 않지만 문득 이런 걱정이 든다. 이렇게 가다가는 중국에 빨려 드는 것 아닌가. 한국기업이 지금까지 중국에서 만들어 낸 일자리가 100만개에 이른다고 중국 방문 길에 만난 전직 고위 경제관료는 말했다. 그 이야기는 무슨 뜻인가. 돈 버는 일을 굳이 내칠 일은 아니지만 뛰어들기만 할 것이 아니라, 기업이나 국가나 앞날을 내다보는 ‘전략’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전략’이란 궁극적인 상황을 예상한 대비책이다. 그래야 작지만 똑똑한 나라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더욱이 중국의 엄청난 흡인력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으니 하는 말이다. ‘한국엔 전략이 없다’는 비판을 종종 들어 왔다는 중국 진출 9년의 한 대기업 간부는 ‘중국을 좀 더 정밀하게 보아야 한다’고 했다. 주중 한국대사관의 현지 구상은 어떤지 궁금하다. 5000명이 한자리에서 식사할 수 있는 거대한 인민대회당을 10개월에 완성했고, ‘사스’로 고생하면서 병상 1000개의 호흡기전문병원을 2주에 만들어낸 중국인이다. 누가 중국인을 ‘만만디’라 할 수 있겠는가. 94년 시작된 베이징∼상하이 1300km의 고속철도계획에 일본(신칸센) 독일(자기부상열차) 프랑스(TGV)가 각축을 벌인 지 무려 10년째를 맞는다. 그 결말을 ‘모두 지쳐 홀랑 벗고 말 것’이라고 대기업 간부는 내다봤다. ‘만만디’에도 전략이 깔려 있는 셈 아닌가.
200년 전 조선 정조 때 초정 박제가(楚亭 朴齊家)는 청나라를 다녀온 후 요즈음의 중국통이 됐다. 수레, 벽돌 등 생활에 편리한 중국문물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한 저서가 북학의(北學議)다. ‘신(新)북학의’를 다시 써야 하고 문물이 아니라 전략을 논해야 한다. 중국 진출 한국기업에 대한 중국 지방자치단체장의 배려를 곧잘 평가한다. 그런데 그들이 진정 한국기업에 목을 맬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제국’을 보는 전략 시급 ▼
지금 중국의 전략은 무엇이겠는가. 세계기술과 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을 때까지 끌어들여 중화(中華)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것 아닌가. 중국 땅엔 세계적 기업들의 기술개발연구소가 거의 진출해 있다. 외국 직접투자는 5000억달러에 이른다. ‘제국 중국’의 등장은 시간문제 아닌가. 아시아권 경제질서는 이미 중화권과 태평양권으로 나뉘는 형세다. 어느 쪽으로 가야 먹고살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나오는 판이다. 중국을 정치 감각이 뛰어난 전략가로 비유한다. 그래서 국가적 전략에서 중국 탐구가 시급하다. 한국경제는 장차 중화권인가, 태평양권인가. 외교는 어떻게 되는가. 지금 우리가 간다고 하지만 실은 중국이 온 것이다. 일본에선 ‘제국 중국’에 대비한 전략논의가 오래전 시작됐다.
눈앞의 작은 성취에 빠질 일이 아니다. 전략이 없으면 오늘의 이득이 훗날 손실로 돌아오고 만다. 알고 가자는 말이다.
<상하이에서>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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