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히틀러 혹한에 무릎 ▼
역사는 반복된다고 누가 그랬던가. 1941년 가을 대소(對蘇)전쟁에서 히틀러의 180만 대군은 모스크바 부근 100km 지점까지 진격했다. 소개령이 내려진 모스크바는 텅 빈 도시였다. 그리고 혹한이 찾아들었다. 소련 남부로 퇴각하는 길에서 히틀러의 탱크는 얼어붙었으며, 지하에 잠복했던 소련군대의 대반격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2003년 겨울, 이라크와 인근 지역에서 ‘테러와의 전쟁’에 대항하려는 이슬람의 반격이 거세지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역사는 이렇게 반복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백악관 매파의 호언장담처럼 테러와의 전쟁은 너무 쉽게 끝나버린 듯했다. 공화국수비대가 허겁지겁 도망가는 모습이 방영될 때만 해도 세계인들은 전쟁의 종언에 안도했다. 그러나 미국이 점령한 이라크는 텅 비어 있었다. 마치 소개령이 내려졌던 190년 전의 모스크바처럼, 이라크인은 있었으나 이슬람적 저항의 실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미국 언론의 표현대로 미국은 적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모른 채 전의(戰意)를 불태워야 하는 곤경에 빠진 것이다. 백악관을 장악한 매파들은 수렁에 빠져들 것인가, 아니면 철군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순간에 직면했다. 말하자면 이라크에 겨울이 오고 있는 것이다.
16일 한국을 방문한 미 국방장관 도널드 럼즈펠드는 온갖 단정적인 말들을 쏟아내고 돌아갔다. 그는 세계 최강 미국군대의 수장이고 프린스턴대 졸업, 최연소 국방장관, 대사, 특사를 두루 섭렵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의 단호한 표정에 밴 경륜, 용기, 오만의 서릿발은 미국의 대(對)이라크 전략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을 것임을 확인시킨다. 그는 백악관의 세계전략을 지휘하는 맹장(猛將)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장(智將)이나 덕장(德將)은 아닌 듯하다. 지장이나 덕장이라면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빠져들었던 함정을 미리 예상했어야 했고, 미국이 이라크에 이식할 민주주의 정치가 군대를 움직이듯 그렇게 일사불란하게 작동하지는 않을 것임을 눈치 챘어야 한다. 그러나 승승장구한 경력의 소유자가 흔히 그렇듯, 그의 표정에는 성찰적 구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그게 문제다.
백악관은 내년 6월까지 이라크인에게 주권을 이양키로 했다. 과도통치위원회 주관 하에 ‘헌법을 제정하고 이라크인에 의한 임시정부를 수립한다’는 내용이다. 우려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민주체제가 후세인의 독재정권을 일소한다 하더라도 종교와 정치의 합일체제, 즉 술탄과 칼리프 통치의 전통이 기저를 이루는 이슬람국가에서 미국식 민주정치가 해결책이 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혼란의 씨앗이 될 것인가? 정치학자 헌팅턴이 고통스러워했던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둘째, 외세를 등에 업은 정권은 항상 정통성 결핍에 시달리고 심각한 지배력의 약화에 부딪친다. 여기에 지역 종교 인종으로 갈라진 역사적 분열요인이 가세하면 이라크는 오랫동안 준(準)내전 상태를 치러야 할 것이다. 이럴 때 미국의 철수가 무슨 의미를 가지랴. 그렇다면, 이번에는 백악관에 긴 겨울이 찾아오고 있는 셈이다.
▼ 13억 이슬람인 적대감 헤아려야 ▼
미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하려는 국가들이 파병 결정을 번복하거나 유보한 속사정이 더욱 절박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테러 위험이 급증하는 이 시점에서 13억 이슬람인들과 그들의 후손이 불태울 파병국에 대한 적대감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가 묘연하다. 온갖 외교 채널을 가동해서 이슬람국가들의 이해를 구한다고 해도 한국은 이제 그들의 적대국이 되었다. 우리에게도 겨울이 오고 있는 것이다.
송호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사회학 hknsong@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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