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보고를 받은 직후 “테러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자위대 파병 방침을 고수하겠다고 밝혔지만 일본 언론은 계획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집권 자민당 내에서도 자위대원 중 희생자가 생기면 정권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이유로 파병 반대론이 확산되고 있다.
▽물 건너간 연내 파견=당초 일본 정부의 복안은 항공자위대를 연내에 보내고 육상자위대 파견은 내년 초로 늦춘다는 것이었다. 연내 파병이라는 대미 공약을 지키는 동시에 상대적으로 피습 가능성이 적은 항공자위대를 먼저 보냄으로써 ‘안전면에서 우선 시간을 벌 필요가 있다’는 점에 착안한 고육지책이었다.
지난달 28일 방위청의 현지 조사단도 ‘치안상황이 생각보다 양호해 자위대 파견은 가능할 것 같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이번 주 중 각의에서 자위대 파견 기본계획을 의결한 뒤 C-130기를 중심으로 한 항공자위대를 연내에 파견한다는 전제로 실무 준비를 진행해왔다.
그러나 외교관 피살 사건이 터지면서 당장 파병계획의 각의 의결이 불투명한 상황이 됐다. 사건 수습에 전력을 다해야 할 처지여서 파병 얘기를 꺼내기가 힘들어진 데다 현지 치안사정이 일본 정부가 자국민에게 설명해온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기 때문이다.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 일본 외상은 피습 직후 위로 전화를 걸어온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에게 “자위대 파병원칙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지만 전문가들은 말 그대로 ‘외교적 수사’에 불과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거세지는 파병반대론=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민당 내 파병 반대론자들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자민당 내에서는 파병을 강행했다가 희생자가 생기면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자민당의 중진인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전 간사장은 “대량살상무기 때문이라던 전쟁의 명분이 없어졌다”면서 “자위대 파견에 반대한다”고 공언했다. 파병 반대에 적극적인 사민당의 후쿠시마 미즈호(福島瑞穗) 당수도 외교관 피살 사건이 보도된 뒤 “자위대 파견은 테러를 확대하는 것”이라며 고이즈미 총리의 대응 태도를 비판했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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