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 지역의 유적 복원공사는 유네스코의 위촉을 받은 세계문화유산위원회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올 9월 현지조사를 벌이기 직전까지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중국 당국은 2월 지안과 환런(桓仁) 지역의 고구려 유적에 대해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하고 난 뒤 복원공사를 서둘렀던 것이다.
공사의 규모를 한눈에 짐작케 하는 것은 약 700채의 민간가옥들을 철거하고 복원했다는 국내성 서쪽 성벽과 호태왕릉(好太王陵·광개토대왕릉) 권역이었다. 아직도 옛 성벽을 주춧돌 또는 뒷벽으로 삼아 서 있는 집들도 내년 6월 세계문화유산위원회의 결정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모두 철거될 예정이다. 지안시청 터에 고분 유적이 있다는 설이 제기되자 즉각 시청 각 부서를 시내 곳곳의 다른 건물로 보내고, 시청 건물을 철거했을 정도로 사업을 몰아붙였다.
중국이 이번 유적 정비사업에서 특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은 경비 문제. 방탄유리로 둘러싼 호태왕비와 왕릉 주변에는 줄잡아 20여개의 감시카메라가 가로등처럼 세워져 있었다. 백호(白虎) 황룡(黃龍) 등의 벽화로 유명한 우산(禹山) 지역의 다섯 고분 주변에는 약 40개의 감시카메라가 지키고 서 있었다.
이번 취재에 동행했던 ‘고구려연구회’ 회장 서길수 교수(서경대)는 “중국이 자국 영토 내 고구려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받는 데 불리한 점은 2000년 이 지역 고분의 벽화를 도난당한 일”이라며 “유적의 안전에 대한 중국 정부의 단호한 의지를 심사위원회에 보여주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중국 정부는 2000년 지안시 부근의 ‘장천(長川) 1호 고분’ 등을 도굴했던 도굴범 3명을 올 4월 사형에 처하기도 했다.
보안에 대한 중국측의 위기의식이 어느 정도인지는 ‘호태왕비’를 찾아갔을 때 확인됐다. 비각(碑閣)의 사면을 방탄유리로 씌운 것으로도 모자라 비각 주변 네 모서리마다 경비견과 경비원이 지키고 있었다. 도대체 이들은 3층 건물 높이인 6.39m의 비를 무엇으로부터 지키려는 것일까.
“벽화도 뜯어가는 놈들인데 무슨 짓인들 못하겠어요? 폭파시키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밤에는 6명이 지킵니다.”
유적복원을 주도하는 지린시는 극도의 경비조치를 취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유물을 쉽게 관람할 수 있도록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이것은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위해 요구되는 또 다른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백호, 황룡, 천인(天人) 등의 벽화로 유명한 우산 4호 고분과 이미 훼손이 심하게 된 우산 5호 고분의 경우 무덤 안에 비디오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고분 외부에 50여명이 입실해 모니터로 벽화를 감상할 수 있는 ‘관람실’을 마련해 놓았다. 내년 1월부터 일반에 공개할 예정인 이 관람실의 LCD 모니터와 프로젝션 스크린을 통해 관람객들은 고구려 벽화의 생생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지안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의 퉁화(通化)로 나와 이 사업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퉁화대 역사학과 겅톄화(耿鐵華) 교수를 만났다. 중국에서 고구려사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평가되는 겅 교수는 1995년 중국 최초의 고구려연구소인 퉁화대 고구려연구기지를 세워 현재 부소장을 맡고 있다.
그는 “내년 6월 심사 전까지 지안시에서 성벽을 막고 있는 가옥 1000호를 더 정리해 유적을 복원하고 관련 서류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정신이 없다”며 올해 초 출간됐다는 자신의 저서를 보여줬다. 제목은 ‘중국고구려사’(지린인민출판사). 양한(兩漢), 위진, 남북조, 수당 등 중국사의 시대구분 속에 고구려를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 책에서 고구려는 이미 중국의 것이었다.
지안=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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