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버드 美대사, 이대생 30명과 열띤 토론

  • 입력 2003년 12월 6일 07시 32분


美대사-여대생 韓美관계 토론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국 대사가 5일 오후 이화여대 국제학부 학생 30명을 초청해 서울 중구 정동 미국 대사관저에서 2시간여 동안 한미관계에 대한 토론회를 가졌다. 허버드 대사는 이 자리에서 “주한미군은 전략적 재배치를 앞두고 있을 뿐이므로 다른 어떤 추측도 배제해 달라”고 말했다.변영욱기자 cut@donga.com
美대사-여대생 韓美관계 토론
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국 대사가 5일 오후 이화여대 국제학부 학생 30명을 초청해 서울 중구 정동 미국 대사관저에서 2시간여 동안 한미관계에 대한 토론회를 가졌다. 허버드 대사는 이 자리에서 “주한미군은 전략적 재배치를 앞두고 있을 뿐이므로 다른 어떤 추측도 배제해 달라”고 말했다.변영욱기자 cut@donga.com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한국의 이라크 파병안에 감사한다고 했지만 내심 불만이 담겨 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는데 어떻게 이해하는 게 좋을까요.”(학생)

“때로 미디어에서 미국 고위인사들의 말 한마디에 너무 많은 해석을 곁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럼즈펠드 장관의 말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국대사)

5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정동 미국 대사관저.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장식된 응접실에서 이화여대 국제학부 학생 30명이 허버드 미 대사와 함께 ‘한미관계의 미래’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이날 토론회는 이 대학에서 ‘국제관계’라는 과목을 강의하는 윤여진(尹汝辰) 교수가 친분이 있는 미 대사관 에릭 존 정무참사관에게 요청해 이뤄졌다. 전 과정은 통역 없이 영어로 진행됐다.

학생들은 우선 ‘낙관론자’와 ‘비관론자’ 두 그룹으로 나누어 자기들끼리 50여분간 토론을 했다.

비관론자들은 “전쟁을 겪어 보지 않은 젊은 세대들은 미국의 ‘간섭’에 점점 더 싫증을 느낀다” “자유무역시대가 무르익으면서 미국은 더 이상 한국에 경제적 특혜를 주지 않는다”는 논리를 폈다. 낙관론자들은 “동북아 정세에서 미군의 주둔은 한국이 치러야 할 기회비용이며, 이에 대한 감정적 논란은 불필요하다” “혼란기가 지나면 결국 미국의 선의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늘어갈 것”이라고 말을 받았다.

이어 학생들은 30여분간 허버드 대사 내외와 뷔페로 식사를 함께 한 뒤 50여분간 질문답변을 계속했다.

허버드 대사는 “낙관론자든 비관론자든 한미관계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라며 “미국은 한국 젊은 세대의 주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으며,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동맹국에 대한 신의를 더 발전시키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허버드 대사는 ‘주한미군 감축 논란, 이에 따른 한국의 방위비 부담 증가에 대한 우려가 많다’는 학생의 질문에 “주한미군은 전략적 재배치를 앞두고 있을 뿐 다른 어떤 추측도 배제해 달라”고 답변했다. 미 대사관의 덕수궁 터 이전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와 서울시의 방침에 전적으로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허버드 대사는 토론회 총평에서 “한국 대학생들의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고, 특히 경이적인 영어실력과 한미관계에 대한 진지한 시각에 감동했다”며 “이들이 주역으로 성장한 시점에 한미관계는 더욱 성숙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토론에 참가했던 김예인양(20)은 “대사께서 학생들의 토론과 질문 내용을 하나하나 메모해가며 듣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학생들을 인솔한 최병일(崔炳鎰) 교수는 “주한미군 장교, 미국 일본 외교관, 탈북자 등을 초청강사로 불러 충분히 사전학습을 했다”며 “학생들이 국제정세에 대한 배경지식이 쌓이면서 자연히 한미관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허버드 대사는 10월 인터넷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젊은이들과 토론회를 갖고 서울대도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경호, 의전상의 이유로 모두 취소된 바 있다.

주한 미 대사관저에서 대학생들을 초청해 현안에 관한 토론회를 가진 것은 미 대사관이 생긴 이래 처음이라고 대사관측은 설명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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