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인종차별 망령 되살아난다

  • 입력 2003년 12월 7일 18시 54분


《반(反)유대주의, 이슬람 혐오, 반(反)터키 정서…. 유럽에서 인종과 문명의 충돌 현상이 갈수록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9·11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에서 벌어진 두 차례의 전쟁이 유럽인의 미덕이었던 ‘톨레랑스(Tolerance·관용)’를 거둬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유럽연합(EU) 확대를 눈앞에 두고 ‘하나의 유럽’이란 기치를 강조하고 있는 각국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현상이다.》

▽“하일 이스라엘”=프랑스 코미디언 디외돈이 지난주 프랑스 3TV의 한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외친 이 말이 일파만파를 던지고 있다. 그는 정통 유대교도 복장으로 히틀러식의 거수경례를 하며 그같이 말했다.

유대인을 나치에 빗댄 그의 ‘코미디 아닌 코미디’는 전국에 생방송됐다. 3TV측은 프로그램이 끝난 뒤 그의 돌출성 반유대주의 행동을 비난하고 “그를 믿은 게 실수”라고 사과했다.

그러자 디외돈은 기자회견을 갖고 “인종차별의 피해자는 유대인이 아니라 흑인과 아랍인”이라고 반박했다. 일각에서는 디외돈이 인기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심심치 않게 유대인 대상 폭력이 벌어지는 프랑스 사회 저변의 정서를 반영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얽히는 ‘히잡’ 논쟁=프랑스 주간지 ‘엘(Elle)’ 8일자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에게 보내는 여성들의 호소문을 실었다.

이 호소문은 “이슬람 여성의 머리 스카프(히잡)는 이슬람교를 믿든 안 믿든 여성 모두에게 참을 수 없는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호소문에는 이벳 루디 전 장관, 역사학자 엘리자베트 바댕테르, 작가 에드몽드 샤를 루, 영화배우 이자벨 아자니 등 저명인사 67명이 서명했다.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공공장소에서 ‘히잡’ 착용을 고집하는 이슬람 여학생과 공무원의 퇴학 및 정직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엘의 호소로 히잡을 둘러싼 정교(政敎)분리와 인종차별 논쟁에 ‘남녀평등’ 논란까지 얽힐 전망이다.

▽‘터키인은 야만인’=그리스 정교회의 수장인 크리스토둘로스 대주교는 4일 “터키인은 야만인이므로 EU에 가입시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아테네의 한 교회에서 강론 중 “1821∼1828년 그리스 독립전쟁 중 터키인들은 그리스 독립 영웅 아사나시오스 디아코스를 말뚝에 꿰어 죽였다”며 “그런 야만인들과는 같이 살 수 없다”고 역설했다.

그러자 그리스 정부 대변인은 “터키의 EU 가입은 우리의 국익과 지역안보에 도움이 된다”고 반박했다.

터키 인접국인 그리스는 터키의 EU 가입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EU 내에서는 이슬람교도가 90%가 넘는 터키의 합류에 대한 거부감이 적지 않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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