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한국은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 동안 976차례나 외침을 당하며 수난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선조들은 슬기와 투지로 이를 물리쳐 민족사를 계승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1894년부터 노골화된 일제의 침략은 결국 한국을 식민지화했다. 이에 수많은 선열은 민족의 생존권과 국권 회복을 위해 구한말 의병투쟁부터 시작해 국내외에서 3·1운동, 임정활동, 의열투쟁, 무장투쟁, 문화투쟁, 외교투쟁 등 항일독립운동을 50년간 전개했다.
일제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 태국 미얀마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의 여러 나라를 유린하며 군국침략주의를 끝없이 확대해 나간 위세를 몰아 1941년 12월 8일 하와이의 미군 군항인 진주만을 기습 공격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한국광복군을 연합국의 일원으로 대일전에 참전시킨다는 전략 목표 아래 일제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다. 의병의 맥을 이은 대한독립군과 그 맥을 이은 한국광복군이 1940년 9월 17일 창군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정정당당하게 ‘대일선전포고’를 할 수 있었다.
한국광복군은 명실 공히 우리 민족사적 정통성을 이어받은 민족의 군대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군으로 1942년 영국과 군사합작을 통해 인도 미얀마 전선에서 임팔(IMPAL) 작전 등 특수군사공작에서 큰 전공을 세웠다. 또 미 육군 전략정보국(OSS)과의 군사합작을 통해 연합군의 일본 본토 상륙시 최전방에서 특별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특수군사훈련을 완료했지만 작전 개시 바로 전 일본이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실전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의 활약은 1943년 11월 27일 ‘카이로 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을 국제적으로 보장받아내는 데에 큰 몫을 했다. 광복 이후 반세기가 넘게 흘렀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가 ‘대일선전포고’ 기념일을 기억해야 할 이유다.
권중찬 광복회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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