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화면이나 창문을 통해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리카르도 산체스 이라크 주둔 미군사령관) “아니오. 우리는 그를 직접 마주보고 묻고 싶습니다.”(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 지도자 4명)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이 체포된 지 하루만인 14일 오후 이라크 바그다드의 한 미군기지 내 작은 방.
과도통치위원 무와파크 알루바이, 아마드 찰라비, 후세인 집권 전 외무장관을 지냈던 아드난 파차치, 시아파 지도자 아델 압델 마흐디가 후세인을 만났다. 후세인이 이들을 다 알아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후세인을 알아봤다. 찰라비 위원을 본 후세인은 그에게 “다른 사람들을 소개해 달라”고 말하는가 하면, 파차치 위원을 돌아보더니 “외무장관이었던 사람 아닌가. 이곳에서 저 사람들과 무엇을 하고 있소”라고 묻기도 했다. ▽후세인과 과도통치위원=뉴욕타임스는 14일 이들이 후세인과 나눈 30분간의 면담 내용을 소개했다. 찰라비 위원은 면담 뒤 기자회견을 통해 “그는 전혀 뉘우치는 것 같지 않았고 오만하기까지 했다”며 “후세인은 ‘이라크에는 강하고 거친 지도자가 필요하다’며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위원은 “그가 빈정댔다”고 표현했다. 이들은 후세인이 대체로 차분했지만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고 전했다. 알루바이 위원이 후세인에게 첫 질문을 던졌다. “1980년과 1999년에 각각 시아파 지도자 아야톨라 무하마드 바크르 알 사드르와 아야톨라 무하마드 사디크 알 사드르를 왜 죽였는가.” 후세인은 “시드르? 아니면 리즐?”이라고 딴청을 부렸다. 아랍어로 “가슴? 아니면 발?”이라는 뜻이 된다. 4명의 지도자들은 계속해서 후세인이 권좌에 있는 동안 저지른 일들에 대해 물었다. 1988년 쿠르드족에 화학무기를 사용해 약 5000명을 숨지게 한 것과 관련해 후세인은 “그것은 이란이 한 짓”이라고 잡아뗐다. 미군의 바그다드 점령 뒤 발견된 수만명의 무덤에 대해서는 “그들의 친척들에게나 물어보라. 그들은 도둑이고, 이란이나 쿠웨이트와 싸울 때 전쟁터에서 도망친 자들이다”고 말했다. 1990년 쿠웨이트를 침공한 일에 대해서는 “쿠웨이트는 이라크의 일부”라고 대답했다. 후세인은 또 “나는 연설을 통해 미군이 결코 이라크를 점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혀 일부 저항세력의 배후 역할을 했음을 시사했다. 파차치 위원이 “잡힐 당시 총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왜 한 발도 쏘지 않았는가. 당신은 겁쟁이가 아닌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후세인은 험한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고 파차치 위원은 말했다. ▽미군 문답조서=미군 당국의 조사에서도 후세인은 △저항세력의 실체 △대량살상무기(WMD) 등에 대해 구체적이고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14일 인터넷판에서 후세인 문답조서를 일부 공개하면서 “미국 조사관의 어떤 질문에도 직접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고 의사표현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기분이나 상태가) 어떤가”라고 묻자 “우리 국민이 노예상태여서 슬프다”고 말했으며, “물 한 잔 하지 않겠느냐”고 권하자 “물을 마시면 화장실에 가야 하겠지만 우리 국민이 노예상태인데 내가 어떻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겠는가”라고 엉뚱하게 답했다. 후세인은 WMD를 보유했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아니다”고 잘라 말한 뒤 “WMD는 미국이 전쟁 명분을 만들기 위해 지어낸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렇다면 왜 유엔 사찰단을 받아들이지 않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사찰단이 대통령 시설에 들어가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후세인이 저항세력을 지휘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체포 당시 은신처에는 저항 세력의 회의 내용이 담긴 편지가 있었으나 통신장비는 발견되지 않았다. 후세인이 직접 반미 공격을 지휘하기보다는 자신의 생존에만 급급한 상황이었다면 미군은 후세인으로부터 저항세력에 대한 정보를 얻기 어려울 수도 있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