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월 14일 미국 텍사스공대의 저명한 미생물학자인 토머스 버틀러 박사(사진)는 탄자니아에서 들여온 페스트균이 든 용기 30개를 분실했다고 대학 당국에 신고했다. 여기까지는 대학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 그런데 다음날 텍사스주의 작은 대학도시에 60명의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들이닥치면서 지난 1년여 동안 과학 연구의 자율성을 놓고 미국 전역을 뜨겁게 달궈 놓은 논쟁이 시작됐다.
FBI는 버틀러 박사가 탄자니아에서 위험한 전염병 세균을 마음대로 들여오고 이를 배양한 뒤 여러 연구기관에 보내면서도 당국에 신고를 하지 않았으며, 제약업체로부터 임상연구에 대한 대가를 받으면서 대학으로 돌아갈 몫을 가로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버틀러 박사는 세균이 든 용기를 직접 운반하는 것은 과학계의 오랜 관행이라며 무죄를 주장해 왔다. 다른 과학자들 역시 버틀러 박사 구속은 테러전쟁 이후 생물학 테러에 대한 공포심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빚어진 당국의 과잉 대응이며, 이 일로 인해 전염병 연구가 위축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올해 노벨화학상 공동 수상자인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의 피터 애그리 교수는 노벨상 상금 일부를 변호비용으로 기부하기도 했다.
최근 법원은 세균 연구와 관련된 기소 내용에 대해서는 모두 무죄를 선고해 일단 과학계의 손을 들어줬다. 나머지 연구비 횡령 및 이면계약 등에 대해선 대부분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이 과학연구의 무조건적인 자유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구속은 지나친 일이지만 전염병균을 부주의하게 관리한 것은 분명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이영완 동아사이언스기자 puset@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