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국가로는 온실가스 최대배출국인 미국(36.1%)과 러시아(17.4%)가 비준을 거부하면 1997년 채택된 의정서는 사실상 발효될 수 없는 상황이다. 120개국이 비준을 완료한 교토의정서를 유독 양대 강대국이 거부하는 데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러시아의 뒤늦은 비토=이런저런 핑계로 비준을 지연해오던 러시아는 최근 의정서 내용 자체에 문제가 있다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안드레이 일라리오노프 크렘린 경제보좌관은 16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교토의정서를 현재 내용대로는 비준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 않았지만 사실상 러시아 정부가 ‘비준 거부’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일라리오노프 보좌관은 “의정서 내용이 차별적이며 효과적이지 않다”고 비난했다. 개발도상국들에 비해 러시아에 대한 온실가스 배출 감축 요구가 과다하는 것.
그는 “모든 국가가 만족할 타협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고민=러시아가 ‘의정서 내용의 불평등성’을 내세우는 것은 대외적인 ‘핑계’일 뿐 실은 의정서가 발효되면 러시아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는 옛 소련 붕괴 후 침체했던 경제가 1999년 이후 급속히 회복되면서 에너지 사용량이 급증해 매년 7∼10%씩 온실가스 배출이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배출 규제를 강화하면 기업 부담이 커져 모처럼 되살아난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된다는 것.
미국이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불확실성과 개도국 불참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경제 부담을 피하기 위해 비준을 거부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러시아는 교토의정서를 비준하는 조건으로 유럽연합(EU)을 향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조건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교토의정서 이행에 가장 적극적인 EU는 러시아가 50억달러의 보조금을 편법 지급하는 방법 등으로 국내 에너지 시장을 통제하고 있다면서 이를 해결해야만 WTO 가입에 협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러시아가 EU를 설득하기 위해 교토의정서 비준을 WTO 가입 문제와 연계시키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내년 3월 대선 때까지는 러시아의 비준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어서 교토의정서는 당분간 표류할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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