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이란 대지진 구조하고 온 최철영 중앙119구조대장

  • 입력 2004년 1월 6일 18시 16분


유달리 어린이 안전에 관심이 많은 최철영 중앙119구조대장. 그는 지난 한해에만 7600명의 어린이를 중앙 119구조대로 초청해 안전체험을 시켰다. -강병기기자
유달리 어린이 안전에 관심이 많은 최철영 중앙119구조대장. 그는 지난 한해에만 7600명의 어린이를 중앙 119구조대로 초청해 안전체험을 시켰다. -강병기기자
“문득 아마겟돈이라는 말이 떠오르더군요. 사람 살던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멀쩡한 건물은 하나도 없고….”

지난해 말 이란 밤시에서 발생한 대지진 참사 현장에 한국구조대를 이끌고 다녀온 최철영(崔哲泳·47) 중앙119구조대장을 5일 만났다. 여독이 채 풀리지 않은 말투였다.

최 대장이 해외로 구조원정을 떠난 것은 지난해 5월 알제리 지진에 이어 두 번째. 구조작업은 12월 29일부터 나흘뿐이었지만 참 많은 걸 느꼈다고 했다.

“생사 문제 등 모든 것을 알라의 뜻에 맡기는 이란인들의 자세가 재난재해 대비에 모럴해저드로 작용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가령 구조작업을 돕던 현지인들이 오후 5시 해만 지면 일제히 일을 멈추고 돌아가더군요. 한 명이라도 더 살리자며 계속 구조하자고 요청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최 대장과 23명의 구조대원은 50여채의 가옥에서 57구의 시신을 수습했다.

“삽과 괭이로 파내려 가는데 10대 소년이 비스듬히 엎어져 있었어요. 살았기를 빌며 혼신을 다해 끌어냈는데 숨이 멎어 있었습니다. 너무 안타까워서….” 대구지하철 등 수많은 사고 현장을 경험했지만 구조작업을 마치고 돌아설 때마다 ‘생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그는 또 “한국구조대는 인도주의 지원국 중 A+등급으로 분류되지만 해외원정 체계는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용기를 이용하는 나라들과 달리 여객기를 타고 가면 공항마다 수속 밟느라 시간도 많이 걸리고 장비도 많이 가져갈 수 없다는 것. 이번에도 15인용 텐트 2개를 갖고 지원인력들과 함께 생활하다보니 일부는 맨땅에서 자야 했다고 털어놨다.

백령도 출신. 76년 고교졸업 후 단신 상경한 그는 친형이 먼저 간 길을 따라 소방공무원이 됐다. 서울시 9급 소방공무원, 제3기 소방간부후보생 시험에 잇따라 합격했고 그 뒤 주경야독으로 방송통신대, 광운대를 졸업했다.

그는 유달리 어린이 안전에 관심이 많다. 지난해 9명의 꽃 같은 목숨을 앗아간 천안초교 축구부 합숙소 화재가 계기였다. 지난달엔 국내 최초로 어린이전용 안전지침서 ‘SOS, 119대장님 도와주세요’라는 책도 발간했다. 지난해 장애아 400명을 포함해 7600여명의 어린이를 경기 남양주시 중앙119구조대로 초청해 안전체험을 시키기도 했다.

매달 비번 대원들과 함께 장애인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펼친다는 그는 “봉사는 생명의 고귀함을 깨닫게 하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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