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영과 풍요의 시대였다.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엔 폐허를, 미국엔 전쟁 특수(特需)를 남겼다. 거리엔 영화포스터와 재즈음악, 그리고 자동차가 넘쳤다. ‘주식과 여자의 스커트는 올라가기만 한다’는 말이 유행했다.
그러나 금주령(禁酒令)이 내려졌던 1920년대는 또한 ‘광란의 시대’이자 ‘무법의 10년’이기도 했다.
술은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6000여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음주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금주령을 비웃듯 대도시에서는 무허가 술집들이 독버섯처럼 번져갔다.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들여온 밀주(密酒)가 범람했다.
금주법의 최대 수혜자는 알 카포네였다.
마피아는 밀주 제조와 밀매, 밀송(密送)을 통해 밤을 지배했다. 검은돈은 부패한 정치인과 경찰의 주머니로 흘러들어갔다. 이권(利權)을 둘러싸고 갱들 사이에 총격전이 난무했다.
경제는 흥청거렸으나 정치는 무력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백악관 도서관에서 포커판을 벌였던 워런 하딩 대통령. 그의 정부에서는 잇따라 오직(汚職)사건이 터져나왔다.
전시(戰時)의 금주령은 식량을 비축하기 위한 것이지만 미국의 경우는 달랐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미운털이 잔뜩 박힌 독일인에 대한 히스테리가 다분히 작용했다. 미국 내 맥주업계는 독일계가 장악하고 있었다.
여기에 음주를 죄악시하는 종교단체의 입김도 가세했다. 그러나 알코올중독은 ‘도덕적 실패’가 아니라 ‘질병’일 뿐이었다.
금주령 하에서 음주는 점차 특권층과 부유층의 상징이 되어갔다. 비싼 술값 때문에 가난한 노동자들은 술을 마실 엄두를 내지 못했다. 금주법은 술에 계급적 성격을 부여했다.
점잖은 여성들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는 것이 사교의 품위를 돋보이게 했다. 청소년들도 술잔을 높이 들었다. 법으로 금지된 음주는 스릴 넘치는 것이었다.
‘금주법은 천사가 되려다 악마가 되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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