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돌아온 케리

  • 입력 2004년 1월 24일 18시 31분


해골과 뼈 클럽. 미국 민주당 대통령후보 지명을 위한 첫 경선인 아이오와주 코커스에서 1위를 차지한 존 케리 상원의원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공통분모다. 좀처럼 닮은 데가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지만 그들은 예일대 시절 잘나가는 집안 학생들의 비밀 ‘망나니 모임’이랄 수 있는 이 클럽의 회원이었다. 물론 졸업 후 행로는 판이하다. 군대를 안 가고 전쟁을 일으킨 부시 대통령과 달리 케리 의원은 베트남군 참전용사로 명성을 떨쳤다. 전쟁에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고, 대통령 선거 후보 여론조사에서 밀렸지만 결국 첫 승을 거둔 그가 ‘돌아온 케리’다.

▷“어떻게 당신들은 사람에게 절대 실수로 죽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입니까.” 전쟁의 참혹함을 알기에 반전활동을 벌이던 케리 의원이 1971년 상원 외교위원회에 던졌던 이 말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한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건 전력과 국가안보를 중시하면서도 일방주의 외교에는 반대하는 케리 의원의 신중함은 민주당원들에게는 아버지상(像)으로 각인되고 있다. 코미디언 제이 리노에 따르면 ‘좀 이상하지만 그래도 잘생긴 얼굴’은 수염 없는 에이브러햄 링컨처럼 느껴진다.

▷이번 코커스에서 케리 의원의 컴백 못지않게 관심을 끈 것은 하워드 딘 후보의 3위 추락이었다. 딘 후보는 네티즌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으나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자와 베트남 참전용사 등 진짜 풀뿌리 유권자들은 케리 의원을 선택했다. 고함과 ‘몸짱’ 자랑에 가까운 지나친 유세전에 “아이오와주의 소들이 되레 ‘광딘병(狂딘病)’을 우려하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데이트는 딘과 했지만 결혼은 케리와 한다”는 얘기도 있다.

▷아이오와주의 첫 승이 후보 지명 가능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에 대한 아이오와 사람들의 적극적인 태도를 보면 이 지역 경선 결과에 관심 가질 이유는 충분하다. 4년 전 이맘때 그곳 사람들은 “앨 고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는데. 세 번밖에 못 보았거든” 하고 대답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대통령선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돌아온 케리에게 열광하며 축제처럼 당원대회를 치른 아이오와의 모습은 부럽기 짝이 없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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