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경제성장을 결정짓는가. 또 어떤 성장전략이 필요한가.
“성장전략가들의 의견은 세 가지로 나뉜다. △지리적 여건 △세계경제와의 통합 정도 △각국 고유의 제도 개선 역량이 성장을 결정짓는다는 시각 등이다.
첫 번째 의견에 따르면 경제성장은 환경, 기온, 자원 등의 차이로 판가름 난다. 공공의 건강과 농업기술 개발을 위해 국가가 역할을 하는 게 성장전략이다.
세계경제와의 통합을 강조하면 무역과 투자 장벽을 없애고 외국인 투자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성장정책이 된다.
나는 앞의 두 가지 관점이 잘못되었다고 본다. 각국 현실에 맞는 제도를 갖추는 것이 성장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 경제성장과 세계와의 통합은 그 결과로서 성취되는 것이다.”
―현실에 맞는 제도를 갖춘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한국은 1960년대 수입관세 장벽을 낮추고 보조금 제도를 통해 수출업자에게 인센티브를 주었다. 모잠비크는 세계은행의 권유에 따라 90년대 초 캐슈(줄기에서 나오는 수지가 고무의 원료로 사용되는 나무의 일종) 수출을 자유화했다. 자유화를 통해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어 성장이 촉진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빈곤만 심화됐다.
같은 정책(무역자유화)을 폈지만 결과는 달랐다. 성공 여부는 현실에 맞는 제도를 어떻게 배합하느냐에 좌우됐다.
중국 베트남 인도 등 최근 성장을 거듭하는 나라들도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시장 중심 정책 방향을 취하되 현실에 맞는 독창적인 제도를 개발했다.”
―2000년대 한국에도 같은 전략이 적용될 수 있나.
“성장 초기에는 몇 가지 정책의 올바른 방향 설정만으로도 성장이 촉발된다. 하지만 성장을 지속하려면 장기간에 걸쳐 생산적 역동성을 유지하고 외부의 충격에 내성을 가질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재산권 보호, 법의 지배, 시장 중심 인센티브 제공, 적절한 경쟁, 건전한 통화·재정정책, 건전성 규제 등은 ‘좋다’는 합의가 이뤄진 정책들이다.
하지만 이들 정책은 구체적인 현실에 맞게 조심스럽고 때로는 정교하며 독창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스탠더드에만 의존하고 유행이 되는 방식만을 좇다 보면 그 경제는 방향성과 역동성을 잃는다.
한국이 취해왔던 실용적이고 (금융시장 중심이 아닌) 실물경제 중심의 경제정책은 불가사의할 만큼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었다. 과거 한국이 보여주었던 방식이 지금 재연되어야 한다.”
―세계경제와의 통합을 성장의 최우선 전략으로 채택할 경우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나.
“아르헨티나는 과도한 세계화 전략이 초래한 부정적 결과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이다.
그 나라 당국자들은 세계경제에 문을 열어놓고 외국인 투자자에게 매혹적으로 보이면 경제성장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우리의 최우선 목표는 투자적격 등급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발경제학 전문 로드릭 교수는 누구 …▼
대니 로드릭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세계 정상급의 개발경제학자로 꼽힌다. 좋은 경제정책이란 무엇인지, 또 어떤 정부는 그것을 성공적으로 펴고 어떤 정부는 그렇지 못한지를 중점적으로 연구했다.
1997년에 펴낸 ‘세계화가 너무 많이 진행되었나?’라는 저서에서는 세계화에 따른 고용관계의 본질적 변화와, 각국 정부들이 일관된 정책과 사회복지를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을 분석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비즈니스 위크는 이 책을 90년대에 나온 중요한 경제학 서적 중 하나로 꼽았다.
99년에 출간한 ‘개방이 도움이 되려면’은 성공적 세계화를 위한 ‘전략서’다. 로드릭 교수는 대외개방을 추진함에 있어서 정부가 국내자본을 축적하고 인적자원을 배양하며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계속 책임지는 것이 지속적 성장을 위한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두 권의 저서로 앨리스 암스덴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석좌교수와 함께 2002년 터프츠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미국의 터프츠대가 7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바실리 레온티에프를 기리기 위해 2000년 제정한 이 상은 경제사상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경제학자들에게 주어진다.
로드릭 교수는 ‘지나친 세계화’에는 부정적이다. 세계화의 심화, 민주정치, 민족국가라는 세 가지 가치는 동시에 성취할 수 없으며 두 개만 동시에 성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근원적 한계를 모르고 세계화를 과도하게 추진하면 2001∼2002년 아르헨티나에서처럼 그 정부는 국내적 갈등을 조정할 수 없고 결국 그동안 세계화를 통해 얻은 과실마저 잃게 된다고 경고한다.
진정한 발전 이루려면 국내투자자 중시해야
과도한 세계화전략 부정적 사례 살펴볼 필요
한국경제 생산적 역동성 놀랄만한 성과이뤄
그런 전략이 어떤 결과(국가부도 사태)를 야기했는지 우리는 잘 안다.
외국인 투자자는 아주 변덕스럽다. 각국은 경제 역동성을 갖출 수 있는 국내적 기반이 필요하다. 외국인 투자자는 그 다음 문제다.”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실패했다는 것인지.
“아르헨티나는 무역자유화, 조세개혁, 민영화, 금융개혁 등 국제자본시장이 원하는 모든 것을 했다. 하지만 국제자본은 그 나라를 등지고 떠났다.
2001년도 페르난도 데 라 루아 대통령과 도밍고 카발로 경제장관은 외국인에 대한 외채상환 계약을 우선시하고 공무원, 연금생활자, 지방정부, 은행 예금자의 권리를 희생시켰다.
시장은 정부가 국내인보다 외국인에게 우선권을 주는 정책을 아르헨티나 의회, 지방, 일반 국민이 얼마나 참을지 우려했다. 실제로 2001년 크리스마스 직전 대규모 유혈 시위가 벌어졌고 대통령과 경제장관이 물러났다.
민주정치하에서 외국 채권자의 요구와 국내 유권자의 이해(利害)가 엇갈리게 될 때 후자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그 경우 외국 투자자는 떠나고 국내적 기반을 갖추지 못한 경제는 무너진다.”
―외국인 투자자의 정서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외국인 투자자에게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외국인의 이해를 국내 투자자보다 우선시할 때 결국 그 정책은 유지될 수 없다. 국내 투자자를 우선시하고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경제정책을 펴야 한다.
국내 민간투자를 북돋우는 정책을 쓸 때, 그것은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인하는 정책으로도 기능한다. 반대로 국내 투자자가 배제된 외국인 투자로 한 나라 경제를 발전시킬 수 없다.”
―좋은 기업지배구조를 갖추는 것이 한국의 경제성장을 유지하는 데 긴요하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 문제는 바로 한국 정부 당국자와 경제전문가들이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이다. 사람들은 유행하고 있는 정책에 지나친 신뢰를 보내는 경향이 있다.
미국식 자본주의가 모든 나라에서 시기에 관계없이 가장 우수한 시스템이라고 주장하긴 어렵다. 부분적 제도를 도입할 것이 아니라 산업, 금융 등 모든 분야를 동시에 고려해 제도를 갖춰야 한다.”
―선진 제도를 부분적으로 도입할 때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말인가.
“제도라는 것은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가 상호 보완하고 지탱한다.
일본에서 국가는 복지비용을 적게 부담한다. 대기업이 종신고용제를 도입하고, 정부가 농업과 중소 서비스 부문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또 경영진과 고용자를 포함한 기업 내부인의 권리가 우선시되고 상대적으로 외부 소액주주들의 권한은 약하다. 영미식 자본주의와 전혀 다르게 움직인다. 경영진은 (외부 소액주주에 의해서가 아니라) 은행에 의해 감시되고 규율된다. 각국의 자본주의는 이렇게 총체성을 가지고 발전해 왔다. 특정한 부분만 바꾸려 할 때 그 결과는 파괴적일 수 있다.”
―결국 특정한 모델이 성장을 위한 정답일 수는 없다는 뜻인가.
“선진국 경제의 다양성에 주목하라. 크게 보더라도 미국과 유럽, 일본은 상호 어깨를 겨룰 만한 부(富)를 오랜 기간에 걸쳐 성공적으로 생산했다.
노동시장 관행, 기업지배구조, 정부 역할, 사회보장, 금융 시스템 등 많은 분야에서 상이한 제도를 발전시켜 왔다. 70년대 많은 사람들이 북유럽 국가들을 흠모했고, 80년대에는 모두들 일본을 본뜨려 노력했다. 그리고 90년대의 모델은 미국이었다. 어떤 특정한 형태가 ‘자본주의의 왕’일 순 없다.”
김용기 기자 ykim@donga.com
▼대니 로드릭 교수 주요 경력 ▼
▽미국 하버드대 졸업, 프린스턴대 석사 및 박사
▽1992∼1996년 컬럼비아대 교수
▽유엔, 세계은행, 폴란드 및 터키 정부 자문관 역임
▽1985∼1992년, 1996년∼현재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 교수
▽미국 전국경제연구소(NBER), 국제경제연구소(IIE),
외교협회 특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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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저서
‘기적인가 의도한 것인가:동아시아 경험의 교훈’(1994)
‘세계화가 너무 많이 진행되었나?’(1997)
‘개방이 도움이 되려면:새로운 국제경제와 개발도상국’(1999)
‘번영을 찾아서:경제성장에 관한 분석적 서술’(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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