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박원재/국회의원의 '韓日 격차'

  • 입력 2004년 2월 10일 18시 47분


10일은 일본군이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1904년 2월 8일 뤼순(旅順)항의 러시아함대를 기습 공격한 지 이틀 뒤의 일이다.

일본 국회의원 40여명은 이날 도쿄 시내 메이지(明治)신궁을 집단 참배했다. 이들은 “일본의 근대화를 주도한 메이지 천황의 공적을 기리고 러일전쟁의 의의를 되새기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우리에게 러일전쟁은 일본이 군국주의적 팽창노선을 걸으면서 한반도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러시아군을 선제공격한 사건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섬나라 일본이 대국 러시아를 무찌른 쾌거’로 기억된다.

집권 자민당과 제1야당인 민주당 의원들은 소속 정당을 불문하고 참배에 나섰다. 히라누마 다케오(平沼赴夫) 전 경제산업상,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민주당 대표 등 거물급 정치인의 모습도 보였다.

한 의원은 “기로에 선 지금의 일본은 외교와 경제면에서 당시 지도자들의 판단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말했다. 이들은 ‘러일전쟁에서 배우는 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또 다른 의원모임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러시아에 빼앗긴 북방 4개 섬을 되찾는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이달 중 러시아 정부의 견제를 무릅쓰고 4개 섬을 방문할 계획까지 세워 놓고 있다.

9일 대한민국 국회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하지 못했다. 벌써 세 번째다. ‘국익을 저버린 처사’라는 따가운 눈총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10일엔 대선자금 청문회로 어수선한 하루를 보냈다.

일본 정계의 여야 대결도 한국 못지않게 치열하다. 민주당은 “총리의 영국 유학 경력이 가짜 아니냐”며 몰아붙이고, 자민당은 “야당 당수의 국회 질문 중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다”며 공개사과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래도 국익과 정당의 이익을 구분하는 정도의 양식은 갖고 있다.

물론 일본 정치인들의 러일전쟁 추앙은 우리에게 유쾌할 수 없다. ‘군국주의의 향수’에 젖은 행동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익 중심 사고에 관한 한 한국 국회의원들보다는 나은 것 같다.

박원재 도쿄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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