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혁명 25주년]神政 복귀냐… 개혁 지속이냐

  • 입력 2004년 2월 10일 18시 47분


《‘혁명 대의로 복귀할 것인가, 개혁 노선을 지속할 것인가.’ 11일은 이란 왕정이 붕괴되고 이슬람혁명이 완성된 지 25주년이 되는 날. 그러나 이란은 이슬람공화국 수립 이후 그 어느 때보다 기로에 놓여 있다. 보수파와 개혁파의 갈등은 극한으로 치닫고 있고 1997년 취임한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의 실용주의 노선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신정(神政)의 쇠퇴=이슬람혁명은 1979년 2월 1일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테헤란 공항에 발을 디디면서 촉발됐고 11일 결국 왕정이 붕괴했다. 신정체제인 사상 최초의 이슬람공화국이 출범한 것이다.

그러나 신정체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흔들렸다. 특히 하타미 대통령은 집권 이후 개혁정책으로 국민들, 특히 젊은층의 폭넓은 지지를 확보했다. 그는 개인의 인권과 자유, 여성의 사회진출 등을 크게 확대했다.

99년에는 이탈리아를 국빈 방문해 가톨릭교회 교황과 면담하기도 했다. ‘이슬람혁명 수출’ 전략이 서방과의 관계개선 노선으로 바뀐 상징적 사건이었다.

▽보수파 롤백=집권 7년째인 현재 하타미 대통령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정책이 뚜렷한 결실을 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요인. 주요 지지기반인 젊은층의 이탈현상도 나타났다. 하타미 대통령의 개혁파가 맞닥뜨린 최대 걸림돌은 이슬람혁명의 대의를 고집하는 보수파. 성직자 96명으로 구성된 국가지도자운영회의와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 혁명수호위원회가 보수파의 기반이다.

지난해 10월 현재 개혁파가 의회에서 비준한 295개의 법안 중 111개가 혁명수호위원회의 거부로 무산됐다. 영국의 중동 경제전문지인 MEED의 지적처럼 “하타미 대통령 집권 7년간 정치적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1월 혁명수호위원회가 개혁파의 총선 입후보 예상자 2000여명에 대한 출마 자격을 박탈하면서 갈등은 극에 달했으며 진통 끝에 하타미 대통령은 사실상 패배를 인정했다. 급기야 이란 대학생들이 하타미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20일로 예정된 7대 총선에서는 보수파가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어디로 갈까?=보-혁 갈등은 경제 침체를 불러왔다. 최근 수년간 이란의 평균 물가상승률은 16%, 실업률은 15% 선을 넘었다.

국영기업이 원유 부문을 제외한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이른다. 민영화와 독점해체 요구가 들끓는 상황이다. 원유 이외의 수출물량은 연간 50억달러에도 미치지 못한다.

관측통들은 보수파가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경제에는 청신호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 문제에서는 개혁파가 보수파보다 더 폐쇄적이기 때문. 보수파 전문관료들은 경제 자유화를 적극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파는 미국의 압력으로 이란 핵 개발이 좌절되는 데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 사찰을 얼마나 성실하게 수용할지도 의문이다. 대미관계 개선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이진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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