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트디즈니가 케이블TV 컴캐스트에 넘어가나

  • 입력 2004년 2월 12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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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케이블TV 업체인 컴캐스트가 11일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업체 월트디즈니 인수를 공개 제안했다. 월트디즈니측도 성명을 통해 “합병 제의를 진지하게 고려하겠다”고 발표했다. 두 업체의 합병이 이뤄지면 2000년 합병을 발표했던 AOL 타임워너(지금은 타임워너로 사명 변경)를 능가하는 세계 최대의 미디어그룹이 탄생하게 된다.》

컴캐스트는 미국 35개주에 21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케이블TV 및 인터넷서비스 업체이고, 월트디즈니는 ABC, ESPN 등 방송국과 디즈니랜드 놀이공원, 유람선 사업을 운영하는 엔터테인먼트 업체이다.

뉴욕 타임스는 “여러 방송 채널을 가진 컴캐스트가 거대 콘텐츠까지 갖게 되면 큰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합병 조건은 어떻게 되나=브라이언 로버츠 컴캐스트 최고경영자(CEO)가 마이클 아이스너 월트디즈니 회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제시한 인수 금액은 660억달러(약 76조원). 이 액수는 세계 적대적 인수합병(M&A) 사례 중 6번째로 큰 규모다.

로버츠 사장은 월트디즈니 주식 1주당 자사 주식 0.78주를 교환하고 부채를 떠안는 방식의 인수를 제안했다. 이는 전날 월트디즈니 주식 종가(24.08달러)에 10%의 프리미엄을 얹은 가격이다.

컴캐스트는 이 거래가 성사되면 월트디즈니의 현 주주들은 통합업체의 지분 42%를 갖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합병 소식이 알려지자 미국 증권가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11일 월트디즈니 주식은 전날보다 14.62% 급등해 27.60달러가 됐고, 거래량도 평소보다 10배 이상 늘었다. 신용평가업체 무디스와 피치도 합병회사의 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하겠다고 밝혔다.

▽합병 성사 여부는 아직 불투명=아이스너 회장은 “컴캐스트의 제안을 면밀히 평가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아직 ‘예스’란 확답을 주지는 않고 있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월트디즈니는 미국의 화신과도 같은 기업이어서 컴캐스트가 쉽게 인수할 수 없을 것”이라며 “월트디즈니의 주주들도 10%의 프리미엄은 충분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고 분석했다.

M&A 관련 주식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아비트리지 뮤추얼펀드의 매트 햄버거 애널리스트도 “월트디즈니의 적정 인수가는 주당 30∼32달러 선”이라며 “특히 월트디즈니의 수익 창출 능력을 감안하면 컴캐스트는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로버츠 사장은 성명을 통해 “양사의 합병은 주주 가치를 높이고 경쟁력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합병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디즈니 아이스너회장 경영다각화가 화근▼

‘세계 최대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월트디즈니가 어쩌다가 합병 대상으로 거론되기에 이르렀을까.

월트디즈니는 영화제작 스튜디오와 ABC방송국, 놀이동산인 디즈니랜드 등을 갖고 있는 세계적인 브랜다.

회사의 출발은 1923년 만화영화 제작가인 월트 디즈니가 세운 월트디즈니 프로덕션. 백설공주(1937년) 피노키오(1940년) 인어공주(1989년) 미녀와 야수(1990년) 등 주옥같은 만화영화를 만들어 히트를 쳤다.

그러나 94년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마이클 아이스너 회장(사진)이 96년에 ABC방송을 190억달러에 인수하는 등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경영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ABC방송은 시청률이 떨어지면서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부채는 눈 덩이처럼 불어나 90년대 후반부터 경영 위기를 맞았다.

지난해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실적 부진을 이유로 아이스너 회장을 최악의 CEO로 꼽았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아이스너 회장은 디즈니의 생존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직격탄을 퍼부었다.

아이스너 회장은 올 1월 만화영화 ‘니모를 찾아서’를 공동 제작했던 픽사(Pixar)와의 협력관계를 단절해 시장의 불안을 야기하기도 했다. 창업주 가문의 로이 디즈니 등 일부 대주주는 아이스너 회장의 경영 방침에 반발해 퇴진을 요구하는 등 월트디즈니에는 경영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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