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도덕의 정치'…미국 보수-진보파는 '코드 다른 인종'

  • 입력 2004년 2월 13일 17시 45분


◇도덕의 정치/조지 레이커프 지음 손대오 옮김/524쪽 1만5000원 생각하는 백성

미국의 보수와 진보를 구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낙태에 대한 찬반, 환경문제 대처에 대한 적극성의 차이, 국방비 확장 대 복지비용 증액 등 현실정책에서의 이견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아니면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다른 ‘인종’인 걸까.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인지언어학 교수인 저자는 후자의 편에 선다. 그는 양진영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비유 등의 분석을 통해 설사 같은 어휘라도 양자가 그 의미를 받아들이는 데 큰 차이가 있음을 지적한다. 한마디로 서로를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진보주의자는 보수주의자를 이기적 윤리관을 지녔고, 작은 정부를 선호하고, 자신의 돈과 권력 확대를 획책하는 음모론자로 본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도 도덕적 열정을 지녔고, 국방력 강화나 교도소 확충 등을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고, 자신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다.

저자가 주목한 것은 양진영이 똑같이 도덕성을 강조하면서 서로를 비도덕적으로 본다는 점이다. 또 보수든 진보든 ‘가정의 가치’에 기반을 둔 도덕관을 국가로 확장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엄격한 아버지 모델(보수주의)과 자애로운 부모 모델(진보주의)을 이끌어낸다.

그에 따르면 보수적 도덕관은 △엄한 아버지의 선호 △절제, 책임, 자립의 장려 △보상과 징벌의 도덕 지지 △외부의 악으로부터 도덕적인 사람의 보호 △도덕질서에 대한 지지를 특징으로 한다. 반대로 진보적 도덕관은 △감정이입 행동과 공정성 장려 △불리한 사람에 대한 도움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 대한 보호 △인생에서 충만함의 장려 △이를 위한 자신의 양육으로 요약된다.

레이커프는 양진영이 선호하는 도덕적 비유 언어를 통해 이를 뒷받침한다. 보수주의자는 힘이나 응보, 경계, 완전함, 성실함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진보주의자는 동정, 상환, 행복, 공정한 분배 등을 좋아한다.

스스로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저자는 이 지점에서 보수와 진보의 전략적 차별이 발생한다고 본다. 보수는 이런 심오한 분열을 눈치 빠르게 포착하고 보수파를 통일시킬 시스템 구축을 위해 30년 이상 수십억달러의 돈을 싱크탱크에 쏟아 부었다. 반면 진보는 같은 자금은 있었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세계관의 근본적 분열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90년대 중반 이후 선거에서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진보가 보수에 판판이 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부제가 ‘보수주의자는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진보주의자는 모르는가?’인 이유다. 한국의 정치현실에서 이 부제는 거꾸로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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