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순택/딘 몰락이 남긴 것

  • 입력 2004년 2월 20일 18시 37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시작된 지 꼭 한 달째인 18일. 경선 시작 전만 해도 인터넷 돌풍을 타고 한동안 선두를 달렸던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가 후보 사퇴문을 발표하고 무대를 떠났다.

선거전 내내 원고 없는 연설로 자주 구설수에 올랐던 그는 이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손수 적어온 사퇴문을 원고대로 읽었다.

한 달 만에 선두주자에서 후보를 사퇴하는 처지가 된 그는 미국 정치사상 ‘최단기간 몰락’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한 언론은 그의 대통령 도전은 ‘닷컴 거품’보다 빨리 꺼졌다고 표현했다.

딘 후보가 남긴 기록은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인터넷을 이용한 혁신적인 선거운동으로 빌 클린턴 전 대통령보다 많은 5000만달러가 넘는 선거자금을 모았다.

정치적 무관심의 상징인 수십만명의 미국 젊은이를 ‘딘 광신도(Deaniacs)’로 만들었다. 경선에 활기를 불러일으켰고 무력감에 젖어 있던 민주당이 자신감을 갖게 된 것도 그의 공로였다.

딘 후보가 만들어낸 인터넷을 통한 풀뿌리 조직과 운동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는 실패했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 정치와 사회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 그의 실패는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교훈을 남겼다.

무엇보다 미국 언론과 유권자들의 철저한 후보 검증 노력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수년 전의 발언과 기록은 물론이고 유세 과정의 작은 실수도 철저히 공개되고 충분한 공론 과정을 거쳤다. 그런 과정을 통해 유권자들은 후보를 꼼꼼히 따졌고 바람에 휩쓸리지 않았다.

딘 후보는 반(反)부시와 반(反)이라크전쟁, 기성정치에 대한 비판으로 바람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는 지도자로서의 준비 부족, 자질 부족, 대안 부족이라는 평가를 받음으로써 바람을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

한국에서도 4월 총선을 앞두고 시민단체를 자칭하는 적지 않은 정치 사조직들이 활개치고 인터넷을 이용한 바람몰이도 거세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럴수록 제대로 된 후보를 검증하고 가려내는 것은 유권자의 몫임을 절감하게 된다.

권순택 워싱턴특파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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