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日 ‘油戰’ 불붙었다…中, 30년만에 일본수출중단 통보

  • 입력 2004년 2월 26일 18시 36분


《미국에 이어 세계 2, 3위의 석유소비국인 일본과 중국이 곳곳에서 에너지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양국간의 ‘에너지 쟁탈전’은 이라크 폭탄테러 등으로 중동 정세가 불안해지면서 더욱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양측 모두 에너지 공급루트를 다양화하고 운송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베리아와 동남아시아를 주목하고 있어 이 일대가 새 ‘격전지’로 떠올랐다.》

▽장군멍군식 에너지 전쟁=중국 정부는 30여년간 지속돼 온 헤이룽장성 다칭(大慶)유전 석유의 대일(對日) 수출을 올해부터 중단하겠다고 최근 일본에 통보했다. 국내 석유 수요가 크게 늘어 외국에서 사다 쓰는 처지에 수출까지 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

중국 최대 유전인 다칭유전의 석유는 1973년부터 일본에 수출돼 중국 경제가 어렵던 시기에 외화를 벌어들이는 역할을 해 왔다.

중국은 올해와 내년의 수출조건을 협상하면서 인도네시아산 석유보다 배럴당 6달러 이상 높은 가격을 요구했다. 일방적 ‘수출 중단’보다는 일본의 ‘수입 포기’를 유도하는 협상전략인 셈.

일본측은 “30년간 쌓아온 신뢰를 무시한 처사”라며 반발했지만 결국 중동과 중남미 등지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양측은 인도네시아의 천연가스 개발 프로젝트를 놓고도 맞부딪쳤다. 일본 미쓰이물산이 지난해 말 세계 최대규모인 이 프로젝트의 지분 10.7%를 영국 업체에서 인수한다고 발표하자 중국 국영석유회사가 영국측과 서둘러 접촉해 지분 중 일부를 먼저 확보한 것.

시베리아유전과 극동지역을 잇는 송유관 건설은 중국이 공들여 놓은 사업에 일본이 뒤늦게 뛰어든 경우. 중국은 시베리아와 다칭유전 사이에 송유관을 설치하는 계획이 확정 직전 단계까지 갔는데 일본이 러시아에 건설비 지원 등을 제시하는 바람에 단가만 올라갔다며 일본을 원망하고 있다.

▽석유 외교로 승부=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말 이집트와 가봉 등을 방문한 것도 석유 외교의 일환이었다. 중국은 가봉과 원유수입 계약을 체결했고 이집트와는 석유가스전 개발 협력협정에 조인했다.

석유매장량이 극히 적은 일본은 중국이 세계 곳곳의 에너지를 싹쓸이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란의 아자데간유전에 25억달러를 투자키로 한 것도 이런 초조감을 반영한 것.

전문가들은 중일간의 에너지 경쟁이 동북아시아가 21세기 중반 전 세계 에너지 최대 소비 지역이 될 것이라는 예측과 맞물려 있다고 분석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중국의 석유수입량이 2010년까지 2배로 늘어 하루 400만배럴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으며 일본의 에너지수요도 2022년까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석유 공급체계가 취약한 것도 중일 양국을 경쟁으로 내모는 요인으로 꼽힌다. 중동에 대한 석유의존도는 일본 88%, 한국 79%이며 중국도 60%에 이른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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