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시대 가로지르기]<2>최원식 교수의 동아시아론

  • 입력 2004년 2월 29일 18시 21분


최원식 교수는 “중국, 일본과의 역사 논란이나 독도 영유권 문제 해결뿐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도 동아시아 3국의 주체적 협력을 지향하는 동아시아론적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영대기자
최원식 교수는 “중국, 일본과의 역사 논란이나 독도 영유권 문제 해결뿐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도 동아시아 3국의 주체적 협력을 지향하는 동아시아론적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영대기자
고구려사를 자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지난해 말부터 고구려사 지키기 운동이 범국민적으로 일어났다. 올해 벽두에는 독도우표 발행을 둘러싸고 일본과의 독도 영유권 시비가 다시 전면에 부상했다. 세계화가 시대적 과제로 요청되고 한류(韓流) 열풍 등으로 한중일 3국간 교류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국가주의, 민족주의적 사고가 맹위를 떨치는 것이 동아시아 3국의 현실이다.

민족자존, 국가이익을 지키면서도 한중일 3국이 상호번영하는 관계를 만들 수는 없을까. 이런 고민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 사회의 주요 담론으로 떠오른 ‘동아시아론’이다. 계간 ‘창작과 비평’ 주간인 최원식 인하대 교수(55·국문학)는 1980년대 초부터 이 논의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왔다.

●한중일 갈등? 동아시아 평화 정착 기회

최 교수는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 시도나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로 한중일이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은 “위기가 아니라 전화위복의 기회”라고 주장했다.

“갈등이 불거진 것을 계기로 동아시아의 역사를 공동 연구하고 공동으로 역사교과서를 편찬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어요. 한중일이 3국간 문제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중국이나 일본 지도층에 중화주의나 국가주의의 뿌리가 깊지만, 이미 두 나라 모두 한국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많은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 중국 일본의 젊은 세대 중에 한국에 호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도 좋은 징조다. 이런 변화의 시기에 한국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라고 최 교수는 강조했다.

“판소리에서 ‘일(一) 고수, 일 명창’보다 중요한 것이 ‘귀 명창’이라고들 합니다. 좋은 소리를 들을 줄 알고 즐길 줄 아는 수준 높은 청중이 있었기에 판소리가 발전했다는 거죠. 우리는 어떤 사태가 발생하면 그것을 단순화해서 흑백으로 양분해 버리곤 합니다. 그렇게 ‘단수성(單數性)’으로 환원시키려는 논리적 질주를 벗어나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복수성(複數性)’을 온전히 드러내도록 사고해야 합니다.”

최 교수가 ‘열린 귀’를 강조하는 이유는 한반도에 분단체제가 엄연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고구려사 귀속이나 독도 문제에 대해 중국 일본에 당당하게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바로 분단체제 때문입니다. 최근의 중국 베이징(北京) 6자회담에서도 드러나지만 우리는 중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 러시아까지도 설득해야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어요.”

최 교수는 “한반도에서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동아시아론의 알파요 오메가”라고 강조했다.

“남북한이 적대적 체제로부터 탈피해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면 남북연합 단계가 최종적인 것이라도 좋습니다. 그만큼 평화체제를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한반도에 이해관계가 얽힌 각국의 입장을 수렴하며 동아시아 평화의 매개자가 돼야만 합니다.”

●‘민족’에서 ‘동아시아’로

최 교수가 ‘동아시아’를 처음 거론한 것은 1982년. 신군부의 집권으로 ‘서울의 봄’은 좌절되고 쿠데타 직후의 팽팽한 긴장 아래서 1970년대를 반추하던 시기였다. 그 이전까지 그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함께 ‘창작과 비평’을 중심으로 ‘민족문학론’을 전파했다.

“1970년대 민족문학론은 서구문학을 전범으로 삼는 것을 부정하면서 아랍,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의 문학을 새로운 전범으로 삼으려는 제3세계론적 경향이 강했습니다. 이때 주요한 이론이 라틴아메리카의 종속이론이었지요. 그런데 빈부격차가 극심한 라틴아메리카와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3세계론 또한 우리 자신이 아닌 타자에 대한 지향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었죠.”

최 교수는 한반도가 자리 잡고 있는 동아시아의 맥락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훈련’을 하기로 했다.

“백 교수가 주창한 ‘분단체제론’을 동아시아로 범위를 넓혀 생각한 겁니다.”

분단된 한반도 남쪽의 문학만을 대상으로 하던 ‘반국주의적(半國主義的)’ 시각을 비판하며 북한을 포함해 한반도 차원에서 ‘일국주의적으로 바라보자’고 문제제기한 것이 ‘민족문학론’이었다면, ‘동아시아론’은 다시 일국 범위를 넘어서 한반도가 자리 잡은 지역의 맥락을 고려하며 한반도를 바라보자는 것이었다. 최 교수의 이 관점은 남북통일이나 한반도 평화가 남북 당사자만이 아니라 한반도 주변국들의 동의하에서만 가능하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더욱 확산됐다. 최 교수의 연구는 그가 편찬한 ‘전환기의 동아시아 문학’(1985), ‘창작과 비평’ 1993년 봄호에 기고한 ‘탈냉전시대와 동아시아적 시각의 모색’, 2003년 편찬한 ‘주변에서 본 동아시아’에서 구체화됐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재야학계-국민 “만주는 우리땅” 인식

최원식 “조선족 이중 정체성 인정해야”

●민족주의적 입장

중국이나 일본과의 역사 문제에 대해 민족주의적 견해를 가장 강력하게 제기한 것은 고대사의 활동무대가 만주 또는 중원이었다거나 일본이 백제나 가야의 식민지였다고 주장해 온 재야사학계였다.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가 제기되면서 소수민족 문제에 민감한 중국을 자극한 것이 바로 재야 민족주의사학의 주장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재야학계의 주장이 한국사학계에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국수주의적인 민족주의 관점이 한국인들의 정서에 깊숙이 스며 있다는 것.

단적인 예가 중국 지린(吉林)성 지역 고구려 유적지를 찾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만주는 우리 땅’이라는 깃발을 앞세우고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해야 한다”고 떠들고 다녔던 것이다. 중국 정부는 급기야 이 지역의 고구려 유적지에 대한 한국인의 관광을 제한했다.

올해 초 한국의 독도 기념우표 발행에 대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이의를 제기하자, 발행 우표 220여만장이 순식간에 매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국 사회에는 계기만 주어지면 언제든 폭발력을 발휘할 수 있을 만큼의 국수주의적인 민족주의 정서가 팽배해 있다.

●최원식 교수의 입장

최 교수의 동아시아론은 서구중심적 또는 제3세계적 시각을 극복하는 한편 한반도가 실제로 자리 잡은 지역의 맥락에서 ‘민족의 과제를 풀어가자’는 시각의 전환이다. 이는 북한을 적대시만 할 것이 아니라 통일을 위해 대화할 상대임을 인정하자는 백낙청 교수의 ‘분단체제론’으로부터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동아시아론의 현실 적용에서 중요한 것은 동북아시아의 주체세력인 한중일 3국의 협력이다. 그러나 3국은 중국의 한국 일본에 대한 오랜 중화주의적 외교 관계, 20세기 일본의 식민 지배 등의 역사적 앙금을 갖고 있다. 이런 경험으로 인해 쌍방간의 관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민족주의 또는 국가주의적 성향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에 앞서게 된다. 최 교수는 “이런 현실을 고려하며 한국이 적극적인 매개자로 나서서 3국 관계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 교수의 ‘민족주의를 넘어선 동아시아론’의 입장은 조선족 문제를 바라볼 때 선명하게 드러난다. 최 교수는 조선족이 한민족, 한핏줄임을 강조하며 ‘관리’하려 하거나 탈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방치’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중정체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조선족은 ‘한국인인 동시에 중국인일 수 있다’는 것. 이런 존재 인정하에 조선족이 동아시아 평화공존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음주의 ‘흑백시대 가로지르기’

△우리는 정말 미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친미 반미의 이분법 극복하기=권용립 경성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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