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음악 그 곳]<1>십면매복과 고촉도(古蜀道)

  • 입력 2004년 3월 3일 18시 43분


당나라 시인 이백까지 시를 통해 험준함을 노래했던 고촉도의 요새이자 방벽 검문관. 촉나라 관문으로 왼쪽 바위벽에 나무를 대어 가설한 잔도가 이곳의 험한 지형을 말해주고 있다. 사진 출처는 ‘삼국촉도람승(三國蜀道覽勝)’.
당나라 시인 이백까지 시를 통해 험준함을 노래했던 고촉도의 요새이자 방벽 검문관. 촉나라 관문으로 왼쪽 바위벽에 나무를 대어 가설한 잔도가 이곳의 험한 지형을 말해주고 있다. 사진 출처는 ‘삼국촉도람승(三國蜀道覽勝)’.
《여행길에 음악은 음식만큼이나 중요한 문화코드다. 그 나라 음악을 안다면 여행의 절반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만큼. 그래서 이번 주부터는 각 나라의 민족음악을 통해 그 나라 여행의 핵심코드를 알려주는 ‘그 음악 그 곳’ 시리즈를 매주 연재한다. 필자인 강선대 박사는 1992년부터 각국의 민족음악을 현장답사를 통해 연구하고 방송을 통해 발표해온 전문가. 현재 명지대 겸임교수로 ‘세계의 민속음악’을 강의하고 있다.》

중국의 문화는 유구하면서 다양하다. 그러나 그런 중국의 문화도 ‘역사’라는 숨결을 불어넣지 않으면 생생하게 살아나지는 않는다. 중국의 전통음악을 대표하는 비파(琵琶)연주곡 ‘십면매복(十面埋伏)’도 마찬가지다.

◇십면매복(十面埋伏)-비파연주 (듣기 click)
◇매화삼롱(梅花三弄)-피리연주 (듣기 click)
 음반 : 중국악기대전(Decca)

십면매복이란 ‘사방에 온통 적들이…’ 쯤으로 해석되는 위급한 상황. 초(楚)의 항우가 한(漢)의 유방군에게 패해 해하(垓下·안후이성)에서 포위돼 건곤일척의 마지막 승부를 앞둔 때(BC 202년). 당시 사방을 에워싼 한나라 군사 속에서 초나라의 노랫소리가 들리자 초패왕 항우와 군사들은 “한나라가 벌써 초나라를 점령했다는 말인가, 어째서 초나라 사람이 이리도 많은가”라며 슬퍼했다고 한다.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실제상황이 바로 이 해하의 전투다.

유방의 심리전에 말려든 항우 진영. 그 노랫소리를 듣고 향수에 빠져들어 전의를 상실한 채 결국 십면매복 상황에서 처절한 패배를 맞는다. 이 곡의 소재는 이 해하의 전투다.그러나 사실은 이런 하나의 상징적 사건을 통해 중국 역사의 일반적인 상황을 그리고 있다. 음악 한 곡을 통해 들여다보는 유구한 중국의 역사. 이 음악은 그 의미와 교훈을 되새겨주는 역사의 프리즘이라고 할 만하다.

역사를 통해 배우는 세상사 흐름과 진리.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해하의 전투’보다 오히려 촉한의 제갈량과 위의 사마의가 펼친 ‘오장원(五丈原)의 결전’이 더 가까이 다가온다. 소설처럼 펼쳐지는 중국의 삼국 역사가 고구려 역사보다 더 친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십면매복은 삼국 역사가 생생히 살아 숨쉬는 ‘고촉도(古蜀道)’를 여행하며 들어야 한다. ‘옛 촉나라의 길’을 답사하는 것은 시공을 초월한 역사의 여행이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를 비춰보는 거울이 될 수도 있다.

고촉도 여행에 앞서 당시 삼국의 부침을 조명해보자. 위의 조조는 한이 힘을 잃자 빠른 정세 판단과 과단성 있는 행동으로 정권을 낚아채 법통을 잇는 정권을 확립한다. 지방토호출신의 오나라 손권은 두터운 인심을 바탕으로 양쯔강 남부 곡창지대에 나라를 세운다. 이 틈바구니에서 한 무리가 백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어렵게 한 지역을 차지하니 그가 촉의 유비다.

그런 중국의 역사가 우리에 가르쳐 주는 교훈. 그것은민초의 선택이 곧 하늘의 뜻이며 역사는 그런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중국의 소리’라 할 만한 대표적인 악기 비파. ‘십면매복’은 이 비파로 연주된다. Decca레이블의 CD음반 ‘중국악기대전’의 앨범 사진이다.

중국인의 사고 구조는 ‘역사의 순환’이었다. 그러나 순환을 초월한 발전의 논리가 오늘의 우리에게 필요한 패러다임이라고 한다면 험준한 아름다운 옛 촉나라의 길을 걸으면서도 눈길은 무섭게 발전하는 중국의 모습에 눈길을 돌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란다. 눈 밝은 이는 남의 나라 역사에서도 가르침을 얻으니 꽃잎 다투어 필 농익은 봄 5월에는 우리 사회도 갈등의 구조가 상생의 구조로 바뀌어 대동(大同)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그러면 나는 여러분에게 십면매복보다 피리(簫)로 연주하는 ‘매화삼롱(梅花三弄)’을 권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터이다.

● 십면매복이란

비파로 연주되는 중국의 대표곡. 비파는 수당(隨唐)시대에 중국에 정착한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발현(撥絃)악기. 고대 실크로드를 통해 전해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 곡은 중국의 민족음악을 소개하는 어느 음반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굳이 소개하자면 ‘Treasury of Chinese Musical Instruments’(Decca)에서 들을 수 있다. 이 음반은 △관악기 △발현악기 △찰현악기(활로 연주) △민속악기 합주의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십면매복은 발현악기 부분에, 매화삼롱(梅花三弄)은 관악기 부분에 포함되어 있다.

▼고촉도(古蜀道) 가는 길▼

위나라 사마의와 벌인 오장원 전투에서 숨진 촉의 군사 제갈량의 무덤. 옛 촉의 땅인 쓰촨성 성도 청두의 무후사(武候祠)에 있다. 사진출처는 ‘三國蜀道覽勝’.

‘옛 촉나라의 길’은 촉의 수도였던 청두(成都·쓰촨성 성도)와 위의 수도였던 시안(西安·산시성 성도)을 잇는 옛길을 말한다. 총연장은 1000km가량. 그러나 고촉도라 하면 그중에서도 험하기로 이름난 찬양(綿陽)과 광위안(光元)의 험준한 길이 먼저 떠오른다. 이 길이 어찌나 험준했던지 당나라의 이백이 그의 시에서 읊었을 정도다. 그리고 중국인 스스로도 만리장성, 대운하(베이징과 항저우를 잇는 4개 성에 걸쳐 남북으로 흐르는 길이 1515km의 거대한 운하)와 함께 중국의 3대 불가사의로 부를 정도다.

고촉도 여행길 출발지는 청두가 좋다. 아시아나항공 직항편이 운행되기 때문이다. 청두에서 제갈량의 신위를 모시는 무후사(武候祠)에 들러 삼국지 역사를 예습한 뒤 쓰촨성의 문호(門戶)였던 찬양으로 간다. 찬양 인근의 장유(江油)시는 시인 이백의 고향이자 촉나라에 최후를 안겨준 위의 결사대 등애군의 침투 루트다.

찬양을 지나면 고촉도의 비경에 들어선다. 여행의 백미는 검각(劍閣) 검문관(劍門關)을 차례로 지나 광원에 이르는 구불구불한 구절양장 길. 검문관은 청두로부터 300km 떨어져 있는데 당시 촉나라로 들어가는 산악의 관문이었다. 이 일대는 경치가 빼어나 찾는 이가 많다.

시안(산시성)과 청두(쓰촨성)을 잇는 장장 1000km의 고촉도(古蜀道)의 명승지 시순봉.

검문관을 지나 들르는 곳은 광위안(廣元)시. 고촉도 중에서도 핵심지역으로 교통의 요지다. 이곳은 중국의 여자 황제인 무측천(武則天)의 고향이기도 하다. 고촉도의 하이라이트인 고촉잔도(古蜀棧道·깎아지른 듯한 바위절벽에 나무 기둥을 박아 넣고 거기에 널빤지를 깔아 만든 길)는 광위안 북쪽의 밍웨샤(明月峽)에서 볼 수 있다. 길이가 140m가량 되는데 후대에 재현해 놓은 것이다. 이 잔도를 직접 보아야 삼국지 이야기가 실감 있게 다가온다. 이곳 경치 또한 일품이다.

지금까지 지나온 곳이 촉 쪽의 관광지라면 결전장인 오장원(五丈原·촉한의 제갈량이 대군을 이끌고 와 위의 사마의와 장기전을 펼치다 진중에서 숨진 곳)과 배후기지인 치산(祁山)은 위의 시안 근처에 있다. 치산은 깎아지른 절벽이 아름다운 곳이다. 한중(漢中) 서쪽의 딩쥔산(定軍山)은 제갈량군의 대본영 같은 곳이었다.

강선대 명지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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