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 의원은 2일 미국 10개 주에서 치러진 후보 지명전에서 대승을 거뒀다. 그날 밤, 케리 진영의 외교 브레인으로 참여하고 있는 한 연구원은 TV로 케리 후보의 승리 선언 장면을 지켜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케리 지지자들은 부시만 아니면 누구라도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케리가 아니면 안 된다고 강하게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에 따르면 케리 후보의 외교정책 입안팀이 조만간 발족한다. 케리 후보는 부시 행정부와의 차이점에 대해 언급해 왔지만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북한에 대한 정책에서 눈에 띄는 차이는 발견되지 않는다. 선택의 폭이 좁다는 것은 미국을 위해서도, 세계를 위해서도 곤란한 일이다.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식의 정책은 바뀌어야 한다.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가는 세계 평화와 세계 60억 인구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라크 부흥정책, 테러와의 전쟁, 핵 확산 방지체제 구축, 무역과 통화, 지구환경 등 각각의 테마가 세계를 바꿀 것이다.
미국만의 일극(一極)구조 아래에서 유엔은 쓸모없는 존재로 내쳐지고, 영국 일본 등 동맹국의 발언권은 약해졌으며, ‘대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과의 ‘거래’에 바쁘다. 미국을 견제할 힘은 어디에도 없다.
전 세계 시민들이 모의선거로 미국 대통령을 뽑아 보면 어떨까. ‘어떤 후보가 당선되는 게 세계를 위해 바람직할까요’ ‘당신이 바라는 대통령감을 뽑고 그 이유를 설명하시오’ 등을 묻는다. 그 결과를 미국 유권자에게 알려 판단 재료로 활용케 한다.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심포지엄 참가자들과 식사를 하면서 이 얘기를 했더니 한 대학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미국은 9·11테러 이후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국내에서 반대당, 야당이 사라졌다. 비판적인 미디어는 뉴욕 타임스 등 극소수를 빼면 어딘가로 가버렸다. 부시를 비판하면 비애국자로 취급된다. 부시의 외교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이 결집하기 시작한 것도 불과 4, 5개월 전부터의 일이다.”
“유엔을 비롯해 어느 국가도 미국을 견제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기대할 것은 국제여론 뿐이다. 국제여론이 미국을 억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 모의선거 결과를 미국 국민에게 알리면 재미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세금도 내지 않는 외국인이 ‘신성한 미국 대통령’을 뽑는다면 미국인이 반발할지도 모른다고 충고했다.
미국의 전직 외교관은 “그럼 미국 국민도 외국의 국가지도자를 뽑는 모의선거를 하겠다고 나서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만약 모의선거가 치러지면 당신은 어느 후보를 지지하겠느냐”고 물었다. “글쎄, 부시와 케리라…. 기권해야 할까.”
이런 구상이 지금까지 없었는지 알아봤다. 작년 10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설된 사이트(www.theworldvotes.org)를 발견했다.
‘새 미국 대통령의 외교정책은 세계 시민들의 직접적인 관심사입니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세계 최강국에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현재의 미국 대통령과 장래의 미국 대통령에게 알리고자 사이트를 개설했습니다. 투표 희망자는 등록해 주세요.’
‘이 사이트에는 반미(反美) 또는 반(反)부시를 의도하지 않음’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후나바시 요이치 일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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