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중 범선으로 대서양 횡단에 도전하는 탐험가 표도르 코뉴호프와 부인 이리나(왼쪽). 에베레스트, 매킨리 등 7대 고산을 등정할 당시의 코뉴호프씨. 동아일보 자료사진
최근 1억5000만 러시아 국민의 관심은 멀리 대서양 너머로 쏠리고 있다. 러시아의 ‘위대한 탐험가’ 표도르 코뉴호프(53)가 새로운 모험에 나섰기 때문이다.
코뉴호프씨는 이달 중 부인 이리나와 함께 요트 알리예 파루사(주홍색 범선)를 타고 미국 뉴포트를 출발해 대서양 횡단에 나설 예정이다. 미국에서 영국까지 대서양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로지르겠다는 것. 이 항해에 성공하면 그는 대서양을 요트로 왕복한 셈이 된다. 지난달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에서 카리브해의 바베이도스까지 이미 한 차례 대서양을 동서로 횡단했기 때문. 그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5세기 전 항해했던 이 길을 14일 만에 횡단하는 세계 기록도 세웠다.
○남극횡단-7대륙 최고봉 정복
코뉴호프씨는 25년간 요트 항해, 남극 탐험 등 온갖 극한적인 모험의 영역을 오가며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온 탐험가. 이미 지금까지 요트로 지구를 세 차례나 돈 경험이 있다. 또 92∼97년에 아시아의 에베레스트와 북미의 매킨리,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등 각 대륙에서 가장 높은 7대 고산을 모두 정복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노를 저어 대서양을 건너기도 했다. 남극을 한번은 걸어서, 한번은 빙상요트(ice boat)로 횡단했다.
각 모험의 전문 영역에 도전할 때마다 주변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7대륙의 최고봉 등정에 나섰을 땐 산악인들로부터 “요트나 타라”는 말을, 남극 탐험에 나섰을 땐 극지 탐험가들로부터 “극지 탐험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때마다 “왜 안 되나? 모든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시도할 권리가 있다”고 반문했고 모든 시도는 성공했다.
코뉴호프씨는 삶에서도 장벽을 깨뜨리는 시도를 부단히 해온 사람이다.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한 그는 여행 도중 틈틈이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망망대해에서 ‘완전한 정적’에 둘러싸여 시를 쓴다. 그 결과 지금까지 8권의 책을 썼고 세계 곳곳에서 사진과 그림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또 혼자 여행하며 때로는 기계공, 때로는 요리사가 되곤 했다. 자신의 여행 소식을 인터넷으로 알리기 위해 컴퓨터도 배웠다. 그러나 졸업장이나 학위는 하나도 가진 것이 없다.
러시아 북부 아르항겔스크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8세 때 할아버지로부터 북극 탐험에 나섰다가 죽은 러시아 탐험가 게오르기 세도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여행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흑해 연안의 항구 도시 오데사에서 항해술과 배를 수리하는 법을 배운 뒤 선장이 됐다. 뗏목 항해로 소련 체육영웅 칭호도 받았다.
그러나 소련 시절에는 외국으로 떠나기 어려워 그의 모험은 시베리아나 북극 지역 같은 소련 영내에서만 이뤄졌다. 소련 지도자들에게 외국행을 허락해 달라는 편지를 끊임없이 보냈지만 “기다리라”는 답장만 돌아왔다.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되며 철의 장막이 무너지자 마침내 소련 밖으로 떠날 수 있게 됐다.
90년 호주로 간 그는 요트로 시드니를 출발해 224일 만에 세계를 일주했다. 요트로 세계를 정복한 첫 번째 러시아인이 된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곳을 찾아다닌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해 세상을 창조했고 에베레스트 산이나 대양도 우리가 늘 숨쉬는 공기같이 친근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의 대서양 왕복 횡단도 코뉴호프씨가 올해와 내년에 걸쳐 항해할 대장정의 일부일 뿐이다. 그는 카나리아 제도에서 아프리카로 남하해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과 태평양을 건널 예정이다. 이 항해는 남미 대륙의 남단을 돌아 미국 동부로 북상해 뉴욕에서 끝난다. 대서양 횡단까지 포함하면 지구를 한 바퀴 돌게 되는 것이다.
○“여행 통해 삶의 의미 찾아”
그에겐 벌써 손자 손녀가 있다. 남들은 안착하고 싶어 하는 나이에 그는 끊임없이 떠난다. 가족들은 그의 든든한 후원자다. 아들 오스카는 아버지의 모험을 기획하고 성사시키는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다.
왜 모험을 계속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는 “여행을 통해 삶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바다 한가운데나 수천m 높이의 고산에 혼자 남겨졌을 땐, 바쁜 일상 속에서는 꿈도 꾸지 못했던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철의 장막 속에 갇혀 지내온 러시아인들조차 이제 어디든지 자유롭게 갈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은 여전히 이루기 어려운 꿈이다. 5대양 7대륙을 ‘앞마당’처럼 누비는 코뉴호프씨의 모험을 통해 많은 사람들은 ‘아쉽지만’ 대리만족을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러시아인들은 오늘도 그의 모험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열광한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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