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정부는 바스크 분리주의자 단체인 ETA를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ETA의 소행임이 확인된다면 1987년 바르셀로나에서 21명의 사망자를 낸 테러 이후 최대의 희생자를 낸 ETA 테러 사건이 된다. 그러나 아랍계 테러 집단의 소행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스페인 최악의 테러=오전 7시반경 마드리드 중심부 아토차 역에서 두 차례의 폭발이 일어났다. 곧 이어 교외의 기차역인 엘포조 역과 산타에우게니아 역에서도 폭탄이 터졌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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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과 피로 범벅이 된 사람들이 파편을 뒤집어쓴 채 거리로 쏟아져 나왔으며, 의식을 잃지 않은 부상자들은 휴대전화로 구조를 요청하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목격됐다. 구멍이 뚫리고 심하게 뒤틀린 열차에 깔려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구급차로는 모자라 버스와 택시가 병원으로 환자들을 옮기는 데 투입됐으며, 병원들은 갑작스레 늘어난 혈액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긴급 헌혈을 요청했다.
스페인 정부는 긴급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하는 한편 3일간을 ‘애도의 날’로 정했다. 각 정당은 막판 총선 선거 운동을 일시 중지하기로 했다.
▽테러의 배경=외신들은 “이번 테러가 ETA의 소행이라면 14일 총선을 앞두고 집권 국민당에 저항과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려는 의도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국민당은 2000년 3월 총선에서 14년간 집권한 좌파 사회노동당을 누르고 정권교체에 성공한 후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에 대해 강경책을 펴 왔다. 2000년 이후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총 650명이 ETA 활동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됐다. 아스나르 총리는 야당 지도자 시절이던 1995년 ETA의 공격을 받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적이 있다. 그는 ETA를 제거하는 것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TA의 정치 조직인 바타수나당은 2001년 5월 총선에서 10%의 득표율을 올리기도 했으나 2003년 대법원에 의해 활동금지 명령을 받았다. 지난달 ETA는 “스페인 북동부 카탈루냐 지방에서는 공격을 중단하겠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무장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바타수나당 지도부는 “이날 테러는 아랍 테러리스트들이 일으킨 것”이라며 ETA의 테러 혐의를 즉각 부인했다. 또 통상 ETA는 공격하기 전에 경고 전화를 해 왔으나 이번에는 사전에 전화가 없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바스크 완전독립 요구 1968년이후 각종 테러
▽ETA(Euzkadi Ta Azkatasuna Basque·자유 조국 바스크)=스페인 북부와 프랑스 남서부 지역에서 바스크 민족의 분리 독립을 요구하며 무장 테러활동을 해온 급진단체.
바스크 민족은 자치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왔으나 1876년 카를리스타 전쟁을 전후해 자치권을 대부분 상실했다. 1936년 스페인 내전 당시 스페인에 합병됐으며, 좌파 활동가들은 1959년 프랑코 정권에 대항해 ETA를 결성했다. 1979년 좀 더 포괄적인 자치권을 인정받고 자치 정부도 생겼으나, ETA는 완전한 분리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유엔과 미국의 테러리스트 명단에 올라있는 ETA는 1968년 이후 각종 테러로 총 850여명을 숨지게 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스페인 정부 각료나 군지도자, 또는 바스크 중도주의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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