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문학예술]유럽인의 변함없는 ‘땡땡 사랑’

  • 입력 2004년 3월 12일 21시 14분


◇땡땡과 알프아르’(Tintin et l'Alph-art)/조르주 레미 지음/카스테르만 출판사

1월 10일은 유럽 만화의 자존심으로 남아 있는 ‘땡땡(Tintin)’의 탄생 7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날을 전후로 벨기에와 프랑스에서는 땡땡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열렸고 특히 그의 마지막 미완성 모험인 ‘땡땡과 알프아르’가 재출간돼 유럽의 땡땡 애호가들을 기쁘게 했다. 땡땡의 아버지는 벨기에 출신의 만화작가, 조르주 레미(1907∼1983). ‘땡땡의 모험’을 쓰고 그리는 데 일생을 바친 그는 본명보다는 본명을 변형시켜 만든 ‘에르제(Herg´e)’란 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말 벨기에의 국왕 알베르 2세는 ‘벨기에의 가장 유능한 외교사절’ 땡땡에게 국가공로훈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땡땡의 장점은 무엇보다 주름살이 생기지 않는 데 있다”며 부러워한 적이 있다. 그의 말대로 20세기 초 ‘르프티벵티엠’ 신문사에서 태어난 소년기자 땡땡은 75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어린이에서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반지의 제왕 ‘프로도’, 매트릭스의 ‘네오’, ‘해리포터’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땡땡의 인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키 140cm, 보름달처럼 동그란 얼굴에 닭 볏 머리를 살짝 치켜올린 주인공 땡땡을 비롯해 주요 등장인물의 외모에서 풍기는 친근성, 세계 각지를 누비며 갖가지 사건에 뛰어들어 제임스 본드보다도 더 냉철하게, 인디애나 존스보다 더 용맹스럽게, 악당을 물리치는 소년기자의 활약상, 누구나 쉽게 공감하는 ‘권선징악’이란 보편적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의 선명성,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일상적 유머의 절묘한 결합, ‘명쾌한 선(ligne claire)’ 하나로 처리된 깔끔한 데생들…. 이 밖에도 수많은 매력이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소비에트에 간 땡땡’(1930)부터 ‘땡땡과 카니발 작전’(1976)에 이르기까지 총 23권의 시리즈로 된 ‘땡땡의 모험’은 구소련, 이집트, 인도, 중국, 티베트 등 지구촌을 한바퀴 돌고 우주공간과 상상의 공간으로까지 이어진다. 이만하면 소설가 에릭 오르스나의 말처럼 마르셀 프루스트는 ‘시간’을, 땡땡은 ‘공간’을 가르쳤다고 할 만하지 않은가!

1986년에 유고작으로 나왔던 ‘땡땡과 알프아르’는 이번에 새로 발견된 에르제의 초벌 크로키에 주석과 삭제의 흔적들로 가득한 자필원고를 덧붙여 새롭게 구성됐다. 위조그림을 사들이는 사기꾼 주술사인 앙다딘 아카스와 땡땡의 대결이 이야기의 축이 되는 이 미완의 작품은 로제 페이르피트의 소설 ‘사냥그림, 페르낭 르그로의 놀라운 인생’(1976)과 오슨 웰스의 마지막 영화 ‘거짓의 F’(1975)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이야기는 그림위조단을 찾아낸 땡땡이 오히려 붙잡혀 산 채로 조각상이 될 위험의 순간에 멈춘다. 그러나 이 작품을 통해 에르제의 창작 과정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은 땡땡 애호가들에겐 또 하나의 놓칠 수 없는 흥밋거리가 아닐까 싶다.

임준서 프랑스 루앙대 객원교수 joonseo@worldonline.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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