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이볜 대만총통 피격]의문의 총격…대만 충격

  • 입력 2004년 3월 19일 18시 48분


천수이볜(陳水扁) 대만 총통이 총통선거를 하루 앞둔 19일 유세 도중 피격돼 대만 전역이 큰 충격에 휩싸인 가운데 선거 정국도 요동치고 있다.

분노한 민진당 지지자들은 격앙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국민-친민 야당 연합도 당혹감과 함께 이번 사건이 선거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걱정했다.

사건 발생 직후 타이베이(臺北)에서는 시민들이 폭력이나 테러 사태 발생을 우려해 집 밖으로 나오지 않거나 퇴근을 서두르는 등 공포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시내에는 경찰들이 대거 동원돼 치안 유지에 나서는 등 살벌한 풍경이 연출됐다.

이날 오후 여야가 남은 유세 일정을 모두 취소한 것도 시민 동원이 여의치 않다고 판단한 데다 불상사 발생을 우려한 때문이었다.

대만에서는 이번 사건을 둘러싸고 각종 유언비어와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총통부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를 예정대로 치르겠다고 발표했음에도 이를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 사람도 많다. 심지어 선거 결과에 따라 계엄령이 내려질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마저 나돌고 있다.

사건의 배후를 둘러싸고도 여러 낭설이 나돌고 있다. 급진 독립파의 범행설, 민진당의 자작극, 보수 반대 세력의 테러, 중국 간첩의 저격, 정신병자의 돌출적 범행설 등이 제기되고 있다.

야당 지지자들은 급진 독립파의 범행 가능성을 주로 거론했다. 한 지지자는 “선거 정국이 천 총통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면서 독립 일정이 어긋날 것을 우려한 급진 독립파가 이번 범행을 저질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번에 야당에 지면 대만 독립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마는 만큼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충격 요법’을 동원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사건은 중간층의 동정표를 얻는 한편 민진당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야당의 표심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의 음모설까지 제기하고 있다. 야당이 집권할 경우 독립이 요원해지는 데다 총통시절의 부정부패가 드러나 구속될 것을 우려해 이번 사건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당 지지자들은 보수 반대파들의 범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데 비중을 두었다. 천 총통의 대만 독립 노선과 극단적인 지역감정 조장에 불만을 가진 세력의 소행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유권자들은 야당이나 중국 간첩의 범행 가능성은 낮게 봤다. 한 시민은 “야당이 그동안 선거 정국을 유리하게 이끌어 왔고, 중국도 대만 국민을 자극할 무모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으로 야당쪽에 기울던 선거 흐름도 급반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 당선되더라도 이번 사건은 향후 대만 정국에 큰 소용돌이를 몰고 올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선거에서 패배한 쪽이 그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경우 선거 과정에서 나타났던 극심한 사회적 분열과 대립 양상이 폭동으로까지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타이베이=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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