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자와히리는 이집트의 학자 집안 출신. 조부는 이슬람학 중심지인 알 아자르대(카이로 소재)의 대학자였고 부친은 카이로대의 약학 교수를 지냈다. 그는 일찌감치 이슬람 원리주의에 심취했다. 15세에 벌써 원리주의 단체인 ‘무슬림 형제단’에 가입했다 체포됐다. 부친이 재직한 카이로대 의대를 1974년 졸업하고, 4년 뒤 외과의사 면허를 딸 때는 ‘일상’으로 되돌아오는 듯했다.
그러나 이슬람 원리주의에 대한 ‘신앙’은 여전했다. 79년 옛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현지에서 의사로 일하며 의지를 더 굳혔다. 81년에는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 암살사건에 가담한 혐의로 3년형을 선고받았다.
출소 뒤 그는 아프간에서 이슬람 지하드 단체를 조직해 본격적인 테러리스트의 길로 들어선다. 파키스탄 주재 이집트 대사관 폭탄테러(94년), 이집트 관광객 58명 학살(97년)의 배후로 지목됐다. 98년 오사마 빈라덴을 만나 자신의 테러조직을 알 카에다와 합쳤다.
98년에는 케냐 및 탄자니아의 미 대사관 폭탄테러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테러로 231명이 숨지고 5000여명이 부상했다. 미국은 2500만달러(약 290억원)의 현상금을 걸고 그를 추적해 왔다. 이집트는 99년 결석재판을 열어 사형을 선고한 상태다.
알 자와히리는 알 카에다의 손꼽히는 전략가로 9·11테러도 그가 기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파키스탄 당국자들은 16일부터 이슬라마바드 남부 300km 지점 와지리스탄 지역에서 전개된 대대적 소탕작전으로 알 카에다의 2인자 알 자와히리가 포위망에 걸려든 것으로 보인다고 19일 전했다. 그러나 압둘 사마드 탈레반 대변인은 이날 알 자와히리는 파키스탄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에 안전하게 머물고 있다고 주장, 이를 일축했다.
이 진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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