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지도부가 뒤늦게 지지자들에 대한 '냉정'을 호소하고 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폭동 사태까지 빚어지고 있다. 당국이 불법 시위에 강력 대응할 방침을 발표하면서 유혈 충돌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타이베이(臺北)의 일부 시민들은 계엄령이 선포될지 모른다며 공포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야당, "선거는 조작됐다"=야당 진영은 선거조작 의혹을 노골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당락 표차도 의심스럽지만 총통 피격사건도 의문점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우선 무효표가 사상 유례없이 많다는 게 야당측의 주장이다. 중앙선관위는 당락을 가른 2만9000여표(득표율차 0.22%)보다 10배 이상 많은 33만7000여표가 무효표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 표가 누구를 찍었는지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상태라고 밝혀 파란을 더하고 있다.
무효표가 북부 지역에 집중된 것도 의문을 더하고 있다. 야당의 표밭인 타이베이시와 타이베이현, 타오위안(桃園)현 3곳에서만 전체 무효표의 3분의 1이 넘는 11만4500여표가 집중적으로 나왔다.
야당측은 "롄 후보와 천 후보에 대한 지지 성향이 뚜렷이 갈라졌던 만큼 무효표가 나오기 힘들다"면서 "특히 야당의 아성인데다 중산 지식인층이 많은 북부에서 무효표가 많았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또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예상했던 국민투표 마저 부결된 마당에 선거직전 언론의 비공개 여론조사에서 10%까지 리드해왔던 롄잔(連戰) 후보가 패배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특히 총통 피격사건이 천 총통의 정치헌금 수수와 부인 우수전(吳淑珍)여사의 불법 주식투자 스캔들로 패색이 짙었던 시점에 발생한 것도 우연치고는 너무 우연이라는 지적이다.
또 사건 발생 당시 총통에 대한 대한 주변 경호가 너무나 허술했고, 방탄차와 방탄조끼도 갖추지 않은 데다, 사건 직후 1.8km 떨어진 타이난(臺南) 종합병원이나 3.5km 거리의 청궁(成功) 대학병원으로 가지 않고 민진당 의사들로 이뤄진 6.5km 밖의 치메이(奇美)병원으로 후송됐으며, 3시간 뒤에야 피격 사실을 발표한 것 등 의문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시민들, "최악의 사태 빚어질 수도"=롄 후보를 중심으로 한 야당 진영은 21일 새벽에 이어 오후 3시 수만명의 지지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총통부 앞에서 격렬한 항의 집회를 가졌다.
천 총통은 긴급 국가보장회의를 개최하고 사태 수습책을 논의했지만 항의 시위 참가자들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타이베이 시민들은 야당이 선거무효 소송 제기와 재검표를 요구하고 있지만 사태는 이미 이런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어떤 결과가 발표되더라도 야당 지지자들이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시민은 "불신이 극에 달했다"며 "선거가 공정했다고 법원이 발표한다고 야당측에서 이를 믿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법원이 재검표를 통해 선거 결과를 번복한다면 이번엔 민진당 지지자들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시민은 "정부가 선거 무효를 선언하고 재선거를 하거나, 계엄령 선포로 야당을 힘으로 억누르는 최악의 사태가 올 수도 있다"고 탄식했다.
타이베이=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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