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고치(高知)경마장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따르면 '하루우라라'라는 이름의 8살짜리 암말은 22일 시합에 출전, '예상대로' 11마리 중 10위를 기록했다. 이로써 데뷔 이래 연패 기록은 106회. 일본인들은 이 말이 언제 우승하느냐 보다, 연패 기록 갱신을 화제로 삼고 열광하고 있다.
이날은 일본 경마협회 소속 기수 중 최다우승기록을 보유한 명기수가 탔기에 기대를 모았다. 레이스 중반 까지는 선전했으나 마지막 직선 코스에서 늘 그랬듯 처지고 말았다. 시합 후 쏟아진 환호와 격려의 박수 때문에 기수는 우승마에 탄 것처럼 경마장을 한바퀴 천천히 돌아야 했다.
입장객 감소로 일본의 각 지방 경마장이 문을 닫고 있지만 고치 경마장은 이 꼴찌 경주마 덕분에 전국 각지에서 모인 1만3000명의 관중으로 이날 만석을 이뤘다. 이날 경기의 마권은 5억엔(50억원)어치가 넘게 팔렸고 이 말을 캐릭터로 한 인형이나 열쇠고리 등 각종 기념품을 사려는 이들은 매장 앞에 장사진을 쳤다. 경찰은 '여유롭게 달려라, 하루우라라' 라는 구호를 넣은 교통안전 스티커도 만들었다.
필사적으로 달렸지만 우승 한 번 못해본 이 경주마에 일본의 많은 직장인들이 애정을 보이는 것은 말을 보면서 자신들의 삶을 연상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당당한 꼴찌' 스타를 작년에 폐기할 뻔 했던 경마장측은 요즘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매 시합 너무도 진지하게 뛰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될 것을 가슴 아파한 사육사가 "그래도 사료값은 하고 있지 않느냐"며 경마장 측에 읍소해 간신히 구제됐던 것이다. 이 꼴찌 경주마가 돈 복을 안겨줄 것을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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