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만년 꼴찌' 경주마 선풍적 인기

  • 입력 2004년 3월 23일 14시 30분


6년간 열심히 달렸으나 우승 한번 못해본 '만년 꼴찌' 경주마가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23일 고치(高知)경마장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따르면 '하루우라라'라는 이름의 8살짜리 암말은 22일 시합에 출전, '예상대로' 11마리 중 10위를 기록했다. 이로써 데뷔 이래 연패 기록은 106회. 일본인들은 이 말이 언제 우승하느냐 보다, 연패 기록 갱신을 화제로 삼고 열광하고 있다.

이날은 일본 경마협회 소속 기수 중 최다우승기록을 보유한 명기수가 탔기에 기대를 모았다. 레이스 중반 까지는 선전했으나 마지막 직선 코스에서 늘 그랬듯 처지고 말았다. 시합 후 쏟아진 환호와 격려의 박수 때문에 기수는 우승마에 탄 것처럼 경마장을 한바퀴 천천히 돌아야 했다.

입장객 감소로 일본의 각 지방 경마장이 문을 닫고 있지만 고치 경마장은 이 꼴찌 경주마 덕분에 전국 각지에서 모인 1만3000명의 관중으로 이날 만석을 이뤘다. 이날 경기의 마권은 5억엔(50억원)어치가 넘게 팔렸고 이 말을 캐릭터로 한 인형이나 열쇠고리 등 각종 기념품을 사려는 이들은 매장 앞에 장사진을 쳤다. 경찰은 '여유롭게 달려라, 하루우라라' 라는 구호를 넣은 교통안전 스티커도 만들었다.

필사적으로 달렸지만 우승 한 번 못해본 이 경주마에 일본의 많은 직장인들이 애정을 보이는 것은 말을 보면서 자신들의 삶을 연상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당당한 꼴찌' 스타를 작년에 폐기할 뻔 했던 경마장측은 요즘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매 시합 너무도 진지하게 뛰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될 것을 가슴 아파한 사육사가 "그래도 사료값은 하고 있지 않느냐"며 경마장 측에 읍소해 간신히 구제됐던 것이다. 이 꼴찌 경주마가 돈 복을 안겨줄 것을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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