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는 공동 테러대책 마련에 열을 올렸다. 이달 11일 터진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폭탄 테러의 ‘후폭풍’이다. EU의 미래에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웠던 EU 헌법 문제에서도 돌파구가 열릴 조짐이다. 14일 스페인 총선에서 승리한 사회노동당의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신임총리가 “헌법안 반대를 재검토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
EU 헌법안은 지난해 12월 정상회의에서 의결권 문제를 둘러싸고 스페인과 폴란드가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합의가 무산됐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정상들은 회원국 중 한 나라가 테러 공격을 받으면 다른 회원국이 자동 개입할 수 있다는 ‘연대조항(Solidarity clause)’에 합의했다.
공동 테러대책을 수립하고, 회원국의 대테러 업무를 조정할 테러 조정관직도 신설하기로 했다. 조정관에는 지스 데 브리에스 전 네덜란드 내무차관을 임명키로 합의했다.
또 △경찰 정보협력 강화 △EU 공동 체포영장 법제화 △국경통제 및 통신추적 강화 △테러자금 흐름 분쇄 △유럽 테러용의자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의 긴급조치에도 합의했다.
EU 헌법에 대해서는 차기 정상회의가 열리는 6월 17일까지 회원국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초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6월 10∼13일 유럽의회 선거 때 헌법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되는 것을 피하려는 회원국들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헌법안 합의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스페인 정부의 ‘재검토’ 발언에 레셰크 밀레르 폴란드 총리까지 “우리도 재검토하겠다”고 화답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스페인 효과’가 관심을 끄는 대목은 EU 내의 정치역학에 미칠 파장이다. 영국 못지않게 친미의 선봉에 섰던 스페인의 이라크 철군 결정과 친유럽 노선으로의 선회는 벌써 작지 않은 기류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정상회의 직전 리비아를 방문해 대테러 협력에 합의한 것도 EU 내 친유럽파와 친미파의 주도권 다툼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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