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난달 30일 베이징(北京)에서 갖기로 한 970억엔(약 9700억원) 규모의 올해 대중 엔차관 서명식을 취소했다. 왕이(王毅) 외교부 부부장과 아나미 고레시게(阿南惟茂) 주중 일본대사가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중국은 ‘일정이 바쁘다’는 이유로 행사 직전 왕 부부장의 불참을 통보했다.
엔차관 서명식이 취소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일본 언론은 엔차관이 작년보다 20% 삭감됐다고는 해도 거액을 제공하는 서명식이 열리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중국은 또 중국 탐사선이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안에서 조사활동을 벌인 것과 관련해 지난달 31일 열기로 한 실무협상도 “중일 외무장관 회담 준비 때문에 담당자가 바쁘다”며 일방적으로 연기했다.
3일 중국을 방문하는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 외상의 경우 중국 체류 일정의 절반 이상이 확정되지 않은 것은 물론 중국측이 회담 시간조차 정식으로 통보하지 않은 상태다.
쩡칭훙(曾慶紅) 중국 국가부주석이 6일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교세라 명예회장 일행과 면담키로 한 약속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등 민간 부문에까지 불똥이 튀고 있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본 관방장관은 중국의 잇단 ‘외교결례’에 대해 “일정상 어쩔 수 없다고 들었다”며 태연한 척 했지만 집권 자민당의 일부 의원들은 “머리를 숙여가면서까지 돈을 꿔줄 필요는 없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당초 중일 외무장관 회담에서 영토 문제를 거론할지를 놓고 망설였지만 상황이 악화된 만큼 일본의 주장을 강하게 펴야 한다는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이즈미 총리도 “중국은 참 어려운 나라다. 역사문제가 중요하다고 해도 저렇게 나올까”라고 말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이에 맞서 중국 정부는 일본 중의원이 센카쿠열도와 관련한 결의문을 채택한 데 대해 “댜오위다오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 엄연히 중국 영토이므로 일본의 결의는 불법이며 무효”라고 반박했다.
쿵취안(孔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 국민은 댜오위다오를 수호할 결의에 차있다”고 말해 대응조치를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도쿄 외교가는 양국 정부 모두 현재 마찰을 빚고 있는 현안에서 양보할 여지가 극히 적다는 점에서 감정대립 양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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