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나바시 요이치 칼럼]케리의 미국, 부시의 미국

  • 입력 2004년 4월 1일 1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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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분쟁 예방을 주제로 국제회의가 열렸다. 유럽 각국의 전현직 정치인과 외교관이 다수 참석했다. 리셉션장의 화제는 스페인 테러로 모아졌다.

“스페인 테러는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이 갖는 한계와 이라크전쟁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줬다. 유럽 각국의 이라크 철수가 계속돼 미-유럽 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스페인 테러는 미국과 유럽이 국제테러에 대한 위기의식을 처음으로 공유하는 계기가 됐다. 이라크전쟁으로 서먹해진 양측 관계는 오히려 호전될 것이다.”

선거에서 이긴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는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대실패’로 규정하고 스페인군을 이라크에서 철수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스페인 테러의 충격도 컸지만 사파테로 총리의 철수 발언이 가져온 충격도 그에 못지않다.

하지만 참석자 대다수는 그의 발언에 비판적이다. ‘이라크에서 철수한다고 해서 테러의 위험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테러리스트가 의도한 대로 될 뿐이다. 따라서 지금 이라크에서 철수해서는 안 된다….’

이라크전쟁에 반대한 사람도, 파병에 유보적인 사람도―나 자신을 포함해―그 점에서는 대체로 일치했다. 벨기에의 전 총리는 “잘못된 전쟁이지만 지금 여기서 물러나는 건 파괴적 행위”라고 말했다.

“전쟁에서는 함께 싸우지 못했지만 평화를 위해서는 함께 싸워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비참한 꼴이 된다”(네덜란드의 전 총리)는 지적에도 동감하는 이가 많았다.

그러면서도 참석자들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근거가 희박한 전쟁을 도발하고, 재건 계획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얼굴을 깨끗이 씻은 뒤 사라져 줬으면 하는 감정이다.

이들에게는 부시 정권에 대한 생리적 거부감 같은 것이 있어 보였다. “부시 정권의 가장 싫은 점은 ‘적 아니면 우리 편’이라는 식의 독선적 세계관”이라고 스웨덴의 전직 외교관은 말했다.

유럽 사람들은 미 민주당의 존 케리 후보가 11월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면 미-유럽 관계가 상당히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이라크 재건과 민주화가 어렵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 유럽이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얼마나 공동보조를 취할 수 있을까. 코소보에서는 세르비아인에 대한 공격이 계속되고 있는데 미군이 이 지역에서 철수하면 미-유럽 협조의 행방은 어떻게 될까.

대립의 뿌리는 미국의 일국주의 및 선제공격을 보는 시각, 더 나아가서는 국제질서를 둘러싼 사고방식의 차이이다.

유럽, 특히 프랑스는 미국의 일극구조가 심화되는 것에 맞서 대항세력을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극화가 세계를 안정시킨다고 유럽은 생각한다.

미국은 다극화가 세계를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세력균형 상태로 되돌려 또 한번 ‘비참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일극화가 세계를 안정시킨다고 미국은 주장한다.(미 외교평의회 ‘대서양 협력관계의 재생’ 보고서)

스페인 테러의 충격과 이라크의 장래는 미-유럽 관계의 장래를 좌우하는 분수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쨌든 유럽에서 케리 대망론(待望論)은 높아지고 있다.

후나바시 요이치 일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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