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미국은 더 이상 저항세력을 ‘사담 후세인 추종 잔당’이라거나 ‘알 카에다의 사주를 받는 집단’으로 부를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이라크 내 강경파를 고립시키고 온건세력 중심으로 민정 이양을 진행하려던 미국의 구상은 우려했던 최악의 시나리오와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전면 봉기로 확산되나=과격 시아파 지도자 무크타다 알사드르를 따르는 메흐디 민병대는 6일 일부 도시를 사실상 접수했다. 나자프의 주요 도로와 공공건물을 장악했으며 쿠파에서는 연합군을 완전히 몰아내고 자체 치안 유지에 들어갔다. 남부 도시 쿠트에서는 메흐디 민병대가 미군의 훈련을 받은 이라크 경찰과 치안 권력을 분점하고 있다.
중북부 수니파 지역에서도 미군은 고전하고 있다. 6일 미군은 팔루자 장악을 3차례 시도했으나 이라크인의 저항으로 진입과 퇴각을 되풀이했다. 1년 전 점령작전 때보다 더 힘겨운 교전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라마디에서는 적어도 12명의 미군이 사망했다.
앙숙이던 수니파와 시아파 저항세력은 미군을 몰아내기 위한 연합전선 구축을 공식 발표했다. 폴 브리머 이라크 미군정 최고행정관은 6일 “이라크를 잘 통제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외신들은 “반미 저항이 조직적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중동지역에서 팔레스타인에 이어 또 하나의 인티파다(민중봉기)가 전개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난감해진 미국의 군사전략=당초 미국은 이라크 경찰을 훈련시켜 치안업무의 대부분을 이관하고 주둔 미군을 감축할 계획이었으나 잠재적 동조세력이던 시아파가 돌아서면서 차질이 생겼다.
미군은 그동안 민심을 고려해 사용을 자제해 온 중화기를 팔루자 진압작전에 대거 동원해 민간인까지 공격했다. 강경한 군사작전은 대다수 이라크인을 확실한 적으로 돌아서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군의 고민은 크다.
미국의 동맹국 전략도 시험대에 올랐다.
애초 유엔의 동의 없이 전쟁을 시작한 미국은 국제기구나 군사동맹체를 통해서가 아니라 설득과 외교적 압박으로 파병 연합군을 구성했다. 4일 이후 연합군의 피해가 속출하자 파병국에서는 자국 병력을 철수하라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참여를 기대하고 있지만 지난주 NATO 외무장관들은 유엔의 역할이 커지지 않으면 깊이 간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한편 무소속 대선후보인 랠프 네이더는 6일 “거짓말과 속임수로 미국을 전쟁에 몰아넣었다”며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했다.
▽민정 이양, 제대로 이뤄질까=백악관은 6일 “6월 말로 예정된 주권 이양 일정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밝혔다.
그러나 이라크 강경세력이 힘을 얻음에 따라 주권 이양의 주체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과도통치위원회의 대표성은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포스트는 “과도통치위 위원들끼리도 과격 저항세력을 비난하는 목소리와 미군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다”고 7일 전했다.
지난해 9월 바그다드 주재 유엔사무소에 대한 테러 이후 사실상 기능이 정지됐던 유엔의 역할이 확대될지도 주목되는 대목. 한스 블릭스 전 유엔 이라크 무기사찰단장은 6일 “점령정책은 실수”라며 “유일한 해결책은 유엔을 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범아랍 기구인 아랍연맹은 7일 유엔의 즉각적인 개입을 촉구했다.
팔루자·바그다드·워싱턴=외신 종합 연합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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