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부터 4월 3일까지 중국 베이징 호텔에서 열린 ‘중국 패션 위크’ 컬렉션에 국내 디자이너로서는 유일하게 참가한 그는 독창적 감각으로 현지의 주목을 받았다. 1월 국내 디자이너로는 드물게 프랑스 파리 오트쿠튀르(고급 맞춤복) 쇼에 참가해 호응을 얻은 지 불과 3개월만의 일이다.
쇼를 관람한 미국 유네스코 패션 컨설턴트 윌마 라가리그는 “한송의 옷에는 창의력과 지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오트쿠튀르 디자이너였던 한송은 이번 쇼를 마지막으로 프레타 포르테(기성복) 디자이너로 변신하겠다고 선언했다. 최고급 맞춤복 수준의 고급 수공예 기성복, 이른바 ‘뉴 오트쿠튀르’를 창조하겠다는 것이다.》
○ 뉴 오트쿠튀르 디자이너
한송은 무척 똑똑한 디자이너다.
미국 뉴욕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파슨스 디자인 학교를 수료한 학력 때문이 아니다. 1960년대부터 활동한 1세대 디자이너인 어머니 트로아 조(64·본명 조영자)의 후광을 두고 하는 얘기도 아니다. 그는 패션 디자인이야말로 철저한 비즈니스임을 잘 알고 있다.
1994년부터 어머니의 의상 브랜드인 ‘트로아’에서 디자이너로 일한 그는 1997년 ‘한송’이라는 이름의 브랜드를 만들어 고급 맞춤복을 디자인해 왔다. 2001년 홍콩 패션위크, 2002년 중국 패션위크, 지난해와 올해 파리 오트쿠튀르 등 주요 해외 컬렉션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비전을 선보였다.
“국내 컬렉션은 디자이너와 고객 모두 영화를 관람하는 가벼운 기분으로 참가하죠. 패션쇼 의상을 보고 ‘저런 옷을 누가 입나’, 쉽게 말해 버립니다. 반면 해외 컬렉션은 디자이너가 제시하는 가능성을 바이어들이 눈여겨 관찰해 사업적으로 연결시키는 곳입니다.”
|
그가 추구하는 ‘뉴 오트쿠튀르’는 차별화된 옷감 개발에서 시작된다. 이번 오트쿠튀르 쇼에 사용한 옷감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원단 디자이너 이은일씨가 작업한 것으로 낚싯줄과 실크 날실인 오간자를 한 올씩 엇갈리게 짜 금속 느낌과 동양적 감성을 결합했다. 겉감을 안감 위에 잘라 붙여 안감이 입체적 실루엣을 만들도록 했다.
베이징 쇼를 앞두고 기자가 찾아간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의 작업실에는 국산 ‘도라지’ 담배, 한국의 고궁 건축 서적, 초등학교 시절부터 연주했다는 전자기타와 하드록 밴드 ‘러시’의 CD, 뉴욕의 단골 가게에서 샀다는 카우보이 부츠, 구체 관절 인형 등이 있었다. 서양과 동양, 과거와 현재가 ‘퓨전’된 공간이었다.
○ 중국 속 한류
1일 오후 중국 베이징호텔 대연회장.
“Riddle it up(수수께끼를 풀어라)”이란 오프닝 멘트와 함께 한송 쇼가 시작되자 1000여명의 관람객 사이에서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두 번의 파리 오트쿠튀르 컬렉션에서 호평 받았던 ‘배트맨’과 ‘우주의 해적들’이란 콘셉트의 의상 47벌이 선보인 것.
영화 속 장면을 연상시키는 패션쇼는 중국 톱 모델 다이링 슝(22)이 피날레를 장식할 때 더욱 고조됐다. 그는 은색 펄 메이크업에 같은 색 오간자로 된, 돛단배 모양의 드레스를 입고 김덕수사물놀이패와 유진박의 연주음악 ‘돛단배’에 맞춰 느린 춤을 췄다.
한송 쇼의 기획과 진행을 담당한 한송의 누나 송지은씨(39)는 “프랑스 모델이 살려내지 못했던 동양적 선(線)이 중국 모델을 통해 잘 살아났다”고 평가했다.
한송 쇼에 대한 현지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중국 패션협회 왕싱 사장이 쇼가 끝난 직후 그에게 중국 패션업계와의 협력을 제안했고, 중국 패션업체들도 현지 생산을 주문했다. 한송은 조만간 다시 중국을 방문해 사업성을 따져본 뒤 중국 내수용 옷을 만들 계획이다. 파리시장 진출을 꿈꾸는 한송에게 중국 시장이 세계로 가는 길목이자 시험대가 된 셈이다.
이번 쇼를 후원한 메이크업 브랜드 부르조아의 파스칼 파올리 한국 지사장은 말한다.
“한송은 패션이 사람들이 모여 교류하는 장(場)임을 아는 현명한 디자이너다.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패션 시장이 그를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베이징=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