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 지원에 유엔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지만 정작 유엔이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 주도했던 식량지원 프로그램에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아들이 개입, 이권을 챙긴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새 이라크 결의안을 이끌어내야 할 미국과, 아들의 스캔들을 막으려는 아난 총장과의 관계 변화가 주목된다.
▽식량 프로그램 비리=유엔은 1991년 걸프전부터 이라크에 경제제재 조치를 취했다. 이로 인해 식량과 의약품 등 생필품이 동이 나 이라크 국민들이 고통을 겪자 안보리는 96년 ‘석유-식량 프로그램’을 승인했다.
이라크 석유를 판 대금으로 생필품을 구입해 배급하는 방안이었다.
그러나 석유 구매자를 후세인 정부가 고를 수 있도록 해 비리의 단초를 제공했다. 후세인 정권의 실력자들과 연줄이 닿은 외국기업들이 원유 구입권을 받아갔다. 후세인 정부는 배럴당 0.25∼0.30달러의 웃돈을 요구해 챙겼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8일 후세인 정부가 이 방식으로 100억달러(약 11조원)의 부당한 수입을 챙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2002년까지 이 프로그램을 통한 석유 판매금은 670억달러(약 77조원)에 이른다.
▽‘코피 게이트’ 가능성=유엔 사무국은 이라크 석유 판매 및 생필품 배급계획을 승인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후세인 정권이 판매대금에 웃돈을 요구하는 상황을 막지 못해 미국과 영국 등의 불만을 샀다.
더구나 98년 12월까지 아난 총장의 아들 코조에게 보수를 지급했던 스위스의 한 업체가 유엔의 감시업무를 수주한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유엔 안보리가 관리감독을 하라고 파견한 직원 및 전문가들도 돈을 챙겼을 것이라는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프랑스 러시아 중국 업체들이 석유 구매 및 식량공급 계약의 75%를 독식한 것도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원인이다.
아난 총장은 1월 이라크 현지신문이 최초로 의혹을 제기했을 때 “조사할 권한이 없다”며 외면했다가 미 언론의 비판 수위가 높아지자 최근 조사위원회를 가동했다. 미 상하원도 관련 청문회를 열어 진상 파악에 나섰다.
뉴욕타임스는 “미국과 유엔의 관계가 개선되고 있을 때 비리의혹이 터졌다”며 “유엔 조사위원회가 안보리의 입김을 받지 않아야 결과를 신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진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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