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외국인 납치]‘撤軍 압박’ 고도의 계산

  • 입력 2004년 4월 11일 18시 57분


이라크 저항세력의 외국인 납치가 이라크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미군과 연합군의 화력이 강한 만큼 이라크 저항세력은 ‘도시게릴라전’과 함께 ‘연합군 국적의 외국인 납치’를 병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한 무장세력에 억류됐다 풀려난 영국 더 타임스의 스티븐 파렐 기자가 전하는 것처럼 동시다발적 납치극 중에는 단순한 반미의식이나 약탈 목적의 외국인 납치도 없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고도의 정치전술=일본인 비정부기구(NGO) 활동가 3명을 납치했던 ‘사라야 알 무자헤딘 여단’이 11일 전격 석방을 결정했다고 발표한 배경에는 미국과 동맹국의 ‘균열’을 겨냥한 정치적 판단이 깔려있다.

물론 무자헤딘 여단과 일본 정부의 협상을 중재한 한 이라크 단체가 이를 번복하는 성명을 내기는 했지만, 무자헤딘 여단은 석방 결정 사실을 알리면서 일본 국민들을 향해 “이라크에서 철수하도록 정부에 압력을 가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최대 동맹국 중 하나인 일본의 국론분열은 물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과 조지 W 부시 정권의 이간을 노린 것이다.

6일과 8일 각각 나시리야와 라마디 인근에서 납치됐다가 풀려난 한국인들에 대해서도 납치범들은 ‘호감’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이들이 즉각 석방된 데는 나시리야에 주둔한 서희 제마부대가 의료 활동을 펼친 것이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연합군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민간인들을 해칠 경우 정치적으로 이익을 얻을 것이 없다는 저항 단체의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확산되는 납치극=납치극은 이라크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납치의 진위를 파악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9일 이탈리아인 4명과 미국인 2명이 바그다드 외곽에서 납치됐으며, 이 밖에도 영국인 1명과 캐나다인 1명,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아랍인 1명이 실종 또는 납치된 상태라고 보도했다.

이튿날인 10일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다른 무장 세력은 알 자지라 TV를 통해 “미국인 인질 1명을 억류하고 있으며 미군이 12시간 내에 팔루자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지 않으면 인질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이들은 토머스 해밀이라는 피랍 미국인의 화면을 내보냈다.

또 이날 두바이의 위성방송 알 아라비야 TV는 ‘순교자 셰이흐 아메드 야신 여단’의 대변인을 자칭하는 이라크인의 주장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방송했다. 이 단체는 테이프에서 한국인을 포함해 외국인 30명을 인질로 잡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인질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편 바그다드 주재 독일대사관을 지키기 위해 독일에서 파견됐다가 실종된 보안요원 2명은 납치된 게 아니라 이라크 저항세력의 총격을 받고 살해된 것으로 전해졌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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