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원재/고속철과 지역통합

  • 입력 2004년 4월 14일 18시 47분


일본 도쿄(東京)역에서 고속철도 신칸센(新幹線)을 타면 2시간38분 뒤 신오사카(新大阪)역에 닿는다. 한국고속철도 KTX가 서울∼부산을 2시간40분에 주파하는 것과 비슷한 시간이다. 신칸센 주행거리가 552km로 서울∼부산(약 420km)보다 먼 점을 감안하면 평균 속도에서는 신칸센이 한 수 위인 셈이다. 운행의 ‘질’에서도 아직은 KTX가 못 미친다. 신칸센은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이 아닌 한 열차가 지연되는 일이 거의 없다. 그 대신 요금은 신칸센이 1만4050엔(약 14만원·편도 일반실 기준)으로 한국(4만5000원)보다 3배가량 비싸다.

▷신칸센은 올해가 개통 40주년이다. 도쿄올림픽이 열린 1964년 세계 최초의 고속철도가 도쿄∼오사카를 시속 200km로 달린 이래 일본 전역이 거미줄처럼 연결됐다. 매일 아침 출근시간대에 도쿄역의 신칸센 플랫폼은 회사원들로 붐빈다. 열차 안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해결하고 오후에 업무를 본 뒤 밤 열차로 돌아가는 ‘당일 출장’은 기업체의 업무 패턴으로 정착됐다. 도요타 마쓰시타 산요 등 오사카 나고야 등지에서 창업한 대기업들이 본사를 도쿄로 옮기지 않고 ‘지방 기업’을 자처하는 것도 신칸센이 있기에 가능한 현상이다.

▷한국 고속철 입찰에서는 민족감정이 고려돼 신칸센이 일찌감치 탈락하고 프랑스 테제베(TGV)가 선정됐다. 일본 업계는 “지형 특성만 놓고 보면 한국에도 신칸센이 적격인데 역사문제에 걸려 실력 발휘 기회를 놓쳤다”며 아쉬워한다. 일본은 중국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간 고속철 계약을 따내려 민관(民官) 합동으로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의 환심을 사기 위해 핵심 기술 이전까지 약속했지만 중-일 관계 악화로 낙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15일 총선은 고속철이 개통된 뒤 처음 치러지는 선거다. 고속철의 순기능으로는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꼽히지만 전국을 1일생활권으로 묶어 지역통합에 기여하는 역할도 결코 작지 않다. 이번 선거에서 고속철은 수십 년간 쌓여 온 지역감정의 두꺼운 벽을 조금이나마 허물 수 있을까. 아니면 개통한 지 보름밖에 안 됐으니 임무 달성은 다음 선거로 미뤄야 할까. 고속철아, 힘차게 달려라.

박원재 도쿄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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