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위크엔드]‘CEO냐 탈락이냐’ 출세게임 ’어프렌티스’

  • 입력 2004년 4월 22일 17시 14분


NBC TV 리얼리티 드라마 ‘어프렌티스’의 14일 마지막회 방송 장면. 도널드 트럼프(악수하는 사람 중 왼쪽)가 최후의 승자인 빌과 악수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NBC TV 리얼리티 드라마 ‘어프렌티스’의 14일 마지막회 방송 장면. 도널드 트럼프(악수하는 사람 중 왼쪽)가 최후의 승자인 빌과 악수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14일 미국 뉴욕 현지 시간 오후 9시. 한국에서 총선으로 전국이 떠들썩할 무렵 뉴욕에선 NBC TV의 한 프로그램에 등장한 빌(32)과 콰미(29)라는 두 젊은이에게 수많은 미국인의 시선이 꽂혀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지난 13주 동안 길거리에서 레모네이드 팔기, 아파트 리모델링해서 임대하기, 카지노 매상 올리기 프로모션 개발 등 매주 주어진 혹독한 마케팅 과제를 수행해 왔다. 미 전역에서 지원한 21만명 중 선발된 16명이 경쟁을 해 매주 한 명씩 탈락되는 가운데 살아남은 마지막 참가자다.

이 두 사람 중 최후의 승자는 부동산과 카지노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도널드 트럼프의 계열사에서 1년 동안 실제로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연봉은 25만달러(약 3억원)나 된다.

○ 각본 없는 리얼리티 드라마

이들이 참가한 NBC의 프로그램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견습생)’는 1월 8일 시작부터 이목을 집중시키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냈다.

‘각본 없는 리얼리티 드라마’란 선전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프로그램의 묘미는 예기치 못한 일이 돌발하는 생동감에 있었다. 또 참가자들이 함께 기숙하며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갖가지 에피소드를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훔쳐보기의 은밀한 쾌감을 만족시켜 주었다.

의견대립으로 핏대를 올리는 모습, 남들은 바빠서 발을 동동 구르는데 한가하게 낮잠을 청하는 모습이 여과 없이 방영됐다.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래의 모습을 엿보면서 시청자들은 참가자들을 비방하고 칭찬하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어프렌티스' 포스터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요소는 팀별 경쟁과 그에 대한 평가였다. 승리한 팀은 호화판 이벤트에 초청되었으며, 패한 팀은 리더와 그가 지목한 두 사람이 트럼프에게서 최후의 심판을 받았다. 그들은 각자 자신을 방어하고 남을 비판할 기회를 갖는데, 이때 화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개개인의 판단력과 됨됨이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그들의 발언과 참모들의 조언을 참조하여 탈락자를 가려낸다. 여기서 트럼프 특유의 사람을 판단하는 통찰력과 사람을 사로잡는 화법이 시청자를 뒤흔든다. 트럼프의 카리스마가 어느 날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님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 You're fired!

트럼프는 세 사람 중 탈락될 한 사람을 가리켜 ‘넌 해고됐어(You're fired!)’ 라고 외치는데, 이 말은 지금 뉴요커의 일상어가 됐다.

상술은 이를 바로 이용했다. NBC의 인터넷 쇼핑몰 ‘shop NBC.com’ 에선 ‘You're fired’가 새겨진 모자와 티셔츠, 머그 컵을 팔고 있다. 이미 어프렌티스를 패러디한 광고도 등장했다. ‘You're fired!’ 자체가 하나의 상표가 되어 미국을 떠돌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You're fired!’를 특허 신청했다. 그는 분명 돈을 좇는 촉수를 가진 사람이다.

마침내 결전의 날인 14일. 골프경기와 콘서트 개최라는 마지막 임무를 무사히 치러낸 빌과 콰미는 최후의 심판대에서 자신이 앞으로 1년간 트럼프의 프로젝트를 운영할 적임자라고 자처했다. 평범한 대학 출신인 빌과 하버드대 경영학 석사(MBA) 콰미, 두 사람 중 과연 누구를 트럼프는 탈락시킬 것인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순간이었다.

두 사람의 발언을 다 듣고난 트럼프는 먼저 콰미가 아주 훌륭한 인물임을 치켜세운 후 “그러나 이번엔 빌, 네가 고용됐어(Bill, you're hired!)”라며 빌의 손을 들어 주었다. 콰미는 그동안 여러 번 지적돼 왔던 대로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점 때문에 마지막 단계에서 발목을 잡혔던 것이다.

트럼프의 입에서 “You're fired!”가 언제 나올까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You're hired!”는 또 하나의 가십거리가 됐다. 빌은 CEO로서 시카고의 트럼프 인터내셔널호텔 앤드 타워의 건축을 책임지게 됐으며 하루아침에 유명인사를 능가하는 명성을 얻었다. 수많은 광고 의뢰가 들어올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 성공한 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 사회는 다시 한번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낡은 화두를 쓰다듬게 됐다. 성공한 자만이 모든 걸 가질 수 있고(Winner takes all), 그 성공의 기회가 주어진 땅이 여전히 미국이라는 사실을 이 프로그램은 보여준다.

반면 이 프로그램은 성공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모두가 성공의 열매를 맛볼 수 없음을 넌지시 알려준다. 참가자 중 한 사람인 트로이는 12번째 관문에서 아깝게 탈락했다.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학력이 문제가 됐다. 또한 최종심에 오른 빌과 콰미는 각각 백인과 흑인으로 인종을 대변하는 양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결과는 알다시피 백인인 빌의 승리.

최종 결전 직전 콰미는 빌과 축배를 들며 “진정 뛰어난 자가 승리하기를(May the best man win)”이란 말을 던졌다. 그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도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뉴욕=김홍탁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디렉터 khong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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