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에서 가장 철저한 통제국가 가운데 하나인 사우디가 이슬람 반정부 세력의 무장공세에 흔들리고 있다.
특히 21일 발생한 치안본부 폭탄테러는 보안당국의 감시를 뚫고 수도 한복판에서 국가 치안의 중추를 공격한 것으로 치안상황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미국은 이미 13일 '믿을만한 정보'를 근거로 테러 공격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미국이 아닌 사우디 정권이 목표=지난해 5월 리야드의 외국인 거주 지역과 미 합작기업 건물 등에서 발생한 4건의 연쇄 자살 폭탄 테러 때 까지만 해도 공격 목표는 분명 미국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17명의 생명을 앗아간 폭탄테러는 사우디 왕궁에서 멀지 않은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무하야 주택단지에서 발생했으며 이번엔 사우디의 치안기관이 공격당했다. 이는 이슬람 반정부 세력의 테러 목표가 이젠 더 이상 미국이 아니라 사우디 왕정이란 것을 의미한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사우디 반체제 단체인 합법권리수호위원회의 무함마드 알 마사리 의장은 "과거 지하드(聖戰) 단체들의 공격이 미국 관련 시설에 집중됐다면 이번 공격은 사우디 보안시설이 타깃이 됐다"고 말했다.
사우디 왕정은 9·11 테러범 19명 중 15명이 사우디 출신으로 밝혀진 이후 핵심테러리스트 26명의 이름과 사진을 공개하고 현상금까지 내거는 등 테러 조직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왔다. 하지만 반정부 인사인 사아드 알 파키는 "치안본부 폭탄테러는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라 수개월, 수년에 걸친 정부의 단속에 대응해 벌어진 것"이라면서 "이는 정부의 강경 탄압이 실패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빗나간 소수의 소행?=사우디 정부는 테러 공격이 있을 때마다 이를 '빗나간 소수의 소행'이라고 말한다.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 카에다 조직을 염두해 둔 말이다.
하지만 외신들은 반정부 세력의 공세가 사우디 집권 왕정의 고질적 부패와 방만한 경제운용, 가혹한 통제에 대한 저항이라고 전하고 있다.
국민들의 왕정에 대한 불만도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왕정은 1932년 건국 이후 헌법도 의회도 없는 독재정권 수립에는 성공했지만 근대화에는 실패했다. 또 미국에 기대어 펼쳐온 각종 정책과 외교노선도 불만의 대상. 석유를 비롯한 경제정책도 잇따라 실패해 국민을 빈곤하게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사우디 왕정이 반정부 이슬람 세력과의 싸움에서 질 경우 민중봉기가 일어나아프가니스탄의 옛 탈레반 정권 같은 극단적 세력이 집권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말할 정도다.
이호갑기자 gdt@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