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살아보니]마이클 케인/회식자리 괴로운 채식주의자

  • 입력 2004년 4월 23일 18시 50분


북아일랜드 출신인 나는 지난해 말 한국 지사로 전근을 준비하면서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불안감의 이유는 나의 채식주의 습관 때문. ‘한국은 유럽이나 미국만큼 채식주의가 발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4개월 동안 이곳에 살면서 ‘한국은 채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살기에 좋은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됐다. 채소로 된 음식이 많을 뿐 아니라 두부, 콩 등 육류대용 식품을 다양한 조리법으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지난 15년간 여러 나라를 여행해보니 러시아와 동유럽에서는 채식주의 문화를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두부나 콩도 쉽게 살 수 없어 채식주의자로 살아가기에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그러나 ‘채식을 좋아하는 것’과 ‘채식주의’는 다르다. 채식주의자는 체질적으로 또는 종교, 환경, 생명운동 차원에서 육식을 삼가는 사람이다. 한국인들은 채식을 좋아하긴 하지만 채식주의를 하나의 생활방식으로 이해하는 배려는 부족한 듯하다.

25년간 채식주의자로 살아 온 나는 ‘완전 채식주의자(vegan)’는 아니다. 육류와 생선은 입에 대지 않지만 우유 치즈 등 동물을 해치지 않는 방법으로 생산된 유제품은 먹는다. 이 정도의 채식주의자는 미국, 유럽 등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채식주의자가 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식당에 가서 ‘채식주의자’라고 밝히는 순간 주변 사람들의 호기심에 찬 시선을 피하기 힘들다. 물론 악의는 없지만 당하는 쪽은 괴롭기 짝이 없다. 식사 내내 “왜 고기를 안 드시나요” “그럼 풀 말고 뭘 드시죠” “고기 안 먹으면 단백질을 어떻게 섭취하죠” 등의 질문이 이어진다. 더 심할 경우 “이거 한번 드셔보세요. 좋아하게 될 거예요”하며 내 접시에 고기를 턱 놓는 ‘친절한’ 한국인도 있다.

한국인의 재미있는 식습관 중 하나는 여럿이 한 가지 음식을 시켜 나눠 먹는 것이다. 이런 식문화가 처음엔 낯설었지만 갈수록 정겹게 느껴진다. 그러나 일행 중에 채식주의자가 있으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대다수 한국식당은 채식주의자를 위한 별도 메뉴를 갖추고 있지 않다. 그 대신 채식 메뉴를 시켰을 때 나눠 먹을 수 있도록 채소 위에 고기를 얹어 주는 경우가 있다. 동료들은 고기를 접시 한 쪽으로 밀어놓아 내가 채소를 골라 먹도록 해준다. 그럴 경우 나는 고기와 함께 조리된 채소도 먹지 않는다고 설명해주곤 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자주 먹는 음식은 비빔밥이 돼버렸다. 고추장 소스가 맛있기도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나 혼자 조용히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식단이 점차 육식 위주로 변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채식주의에 대한 아량을 기대하기는 점점 힘들어지는 것일까.

마이클 케인 디아지오코리아 조직관리 담당이사

약력:1967년 아일랜드 데리에서 태어나 프랑스 캉(Caen)대학에서 국제경영학을 전공했다. 주류회사 시그램, 디아지오 본사 등에서 8년 넘게 근무했고 4개월 전 한국에 왔다. 여행이 취미인 그는 50번째 방문국가인 한국의 풍광을 열심히 사진에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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