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명제는 여전히 상식으로 통한다. 그러나 이 상식 속엔 한 가지 무지와 두 가지 편견이 들어 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으로 밟았다는 것은 무지다. 아메리카가 유럽인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것은 유럽중심주의적 편견이고,신대륙이라는 명칭을 쓰는 것 또한 아메리카를 유럽인들의 사냥감으로 보는 승리자의 역사관에서 비롯된 또 하나의 편견이다.에드워드 사이드가 유럽중심주의에 도전했고 노엄 촘스키나 하워드 진이 승리자의 역사에 저항한 선구자였다면, 이 책의 저자인 멘지스는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사’를 한 수준 끌어올린 실증적 연구의 전형을 제시했다. 그는 실증으로 상식을 전복했다.
이 책이 전복적인 이유는 콜럼버스 이전에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한 사람들이 중국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한다는 데 있지 않다. 사실 이런 주장은 중국학자 웨이쥐셴의 ‘중국인의 아메리카 발견’을 포함하여 1000권이 넘는 책에서 이미 상당 부분 제시됐다. 이 책의 전복적 요소는 명대 영락제(永樂帝) 때 정화(鄭和)의 함대가 1421∼23년의 6차 남해원정 기간에 아메리카를 발견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실증했다는 사실에 있다.
이 책의 결론이 영국 왕립지리학회에서 발표될 때 36개국에 생중계된 것은 책의 서사구조가 지닌 흡인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이 같은 사실적 전복의 호소력 때문이다.
사실 ‘정화의 남해원정’에 대한 선행 연구는 멘지스 이전에도 많이 있다. 미야자키 마사카쓰(宮崎正勝)도 그중에 한 명이다. 그는 7차까지 이루어진 남해원정의 규모와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었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멘지스처럼 콜럼버스의 니나호와 비교함으로써 세계사의 유럽중심주의적 해석과 대결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멘지스는 조지프 니담의 방대한 저작인 ‘중국과학기술사’에서 입론을 빌려와 15세기 초반 영락제 통치시대 중국의 선박기술과 천문학, 물적 인적 동원능력의 선진성을 검증했다. 그리고 그것들이 유럽인에 비해 300∼400년 심지어는 500년이 앞서 있었기에 정화함대가 콜럼버스보다 71년 먼저 아메리카에 도달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또 하나의 ‘콜럼버스적 발견’인 셈이다.
그렇지만 멘지스가 또 하나의 ‘콜럼버스의 발견’을 일궈낸 것은 성과인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사람을 콜럼버스에서 정화의 함대로 바꾼다고 해서 ‘중심’주의적 역사와 승리자의 역사가 극복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최초였는가’를 밝히는 것보다 오히려 멘지스가 부차적으로 기술해 놓은 당시 동서양의 생생한 생활상과 자연환경 복원에 더 관심과 애정이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 희 교 광운대 교수·중국사 hgkim@daisy.gw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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