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형준/‘이라크 終戰1년’ 그러나…

  • 입력 2004년 4월 30일 18시 22분


지난해 5월 1일. 이라크 공격 43일 만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주요 작전이 마무리됐다”며 호기롭게 사실상의 종전(終戰)을 선언했다.

미국은 그때부터 이라크 민주화 일정과 재건사업을 비롯한 일련의 구상을 착착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미국의 국력 앞에는 어떠한 방해물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로부터 1년. 이라크는 미국이 의도한 대로 굴러가기는커녕 오히려 미국을 사면초가(四面楚歌)로 몰아넣고 있다.

무엇보다 이라크 국민 대다수가 미국에 등을 돌렸다. 3월 말 미군 시신 훼손사건을 계기로 미국이 무자비하게 팔루자 지역을 공격하자 미국에 비교적 우호적이었던 시아파조차 완연히 적으로 돌아섰다. 오랜 갈등을 겪어 온 시아파와 수니파는 어깨동무를 하고 팔루자에서 반미항전에 나설 정도로 단결했다.

지금 이라크의 저항은 문자 그대로 ‘제2의 전쟁’을 방불할 정도이다. 올해 4월 한 달간 사망한 미군은 155명으로 전쟁 기간 43일 동안 숨진 138명보다도 많다. 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로 출현한 강경 시아파 지도자 무크타다 알 사드르는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 못지않게 미국에 위협적이다. 제2, 제3의 사드르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사회도 미국의 편이 아니다. 이라크 공격에 반대했던 프랑스와 독일은 종전 후 한때 미국 주도의 대세에 순응하는 듯하더니 다시 ‘유엔 중심의 이라크 해법’을 외치고 있다. 미국의 맹방 스페인은 병력 철수를 단행했다. 전통적으로 미국에 우호적이었던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도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궁에 빠진 미국의 이라크 해법은 무엇일까. ‘문명충돌론’을 쓴 새뮤얼 헌팅턴은 90년대 중반 국제사회 질서에 대한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소련 붕괴 후 국제사회는 초강대국 미국과 강대국 유럽, 그리고 일본 등이 공존하는 사회로 바뀌었다. 초강대국 미국이 국제사회의 주도권을 잡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독선으로 흐르면 강대국들이 연합해 초강대국을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 미국은 유일한 초강대국이 될수록 더욱 겸손해져야 한다.”

박형준 국제부기자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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