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지미 카터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담당 특별보좌관을 지냈으며 지금은 존스홉킨스대 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세계적 전략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제국의 선택:지배인가 리더십인가’(황금가지)와 유럽의 지성으로 평가되는 슬로베니아의 슬라보이 지제크의 ‘이라크’(도서출판 b)이다. 브레진스키의 책이 미국의 시점에서 그 지배전략을 비판했다면 지제크는 미국의 공격을 받은 이라크의 시점에서 미국을 비판하고 있다.
브레진스키는 2000년 다른 저서 ‘거대한 체스판’에서 미국의 21세기 세계전략에 대해 조언했다. 당시 그는 냉전종식과 더불어 미국은 지구상 한번도 유례가 없던 ‘세계 일등적 지위(global supremacy)’에 올랐다면서 이를 유지하는 관건은 유라시아 대륙의 장악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이런 충고는 결과적으로 들어맞았다. 미국은 9·11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공격을 통해 중앙아시아 한복판에 교두보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책에서 노(老) 전략가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미국의 방식에 대한 걱정이다. 그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 노선이 국제적 동의에 의한 지도력의 발휘가 아니라 힘에 기초한 독단적 지배에 의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지제크는 류블랴나대 사회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토대로 대중문화와 정치현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해 온 학자. 구 공산권 시절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했으나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기점으로 강력한 미국 비판자로 변신했다.
지제크는 이라크 공격과 관련해 미국이 내세우는 명분이 논리의 일관성을 상실했다고 일침을 놓는다. 미국의 공격을 항아리를 빌려 갔다가 깨뜨린 사람의 일관성 없는 변명에 비유한다. 처음엔 항아리를 안 빌렸다고 잡아떼더니, 이어 항아리가 깨진 것은 돌려준 다음이라고 우기고, 마지막엔 이미 빌릴 때부터 깨져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같다는 것. 미국도 처음엔 대량살상무기 보유를 내세우다 근거 없음이 드러나자, 다음엔 9·11테러와의 연계설을 들고 나왔고, 이마저 부인되자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자비한 독재정권임을 내세웠다는 설명이다.
부시 행정부의 비논리성을 비판하는 점에선 브레진스키도 마찬가지다. 브레진스키는 ‘테러와의 전쟁’이란 표현은 마치 제2차 세계대전을 ‘전격전(독일군의 군사전술)과의 전쟁’이라고 선언하는 것처럼 적이 누구든 그 싸움 방식에 대해서만 시비하는 꼴이라고 지적한다.
브레진스키는 이에 대한 돌파구로 미국의 안보와 세계의 안보를 동일시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는 적(敵)을 ‘테러’라는 싸움의 방식으로 규정하고 악(惡)을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한 인물로 육화하는 단순함에서 벗어나, 테러를 배태한 정치사회적 환경을 제거하고 동맹국의 동의를 끌어내는 복잡한 게임에 나설 때라고 말한다.
이에 비해 지제크의 철학적 고민은 미국식 민주주의 저 너머로 영역을 넓힌다. 지제크는 민주주의는 복수성(다양성)을 인정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게임의 법칙 아래 ‘바깥으로의 한 걸음’을 내딛는 근본적 시도를 거부하는 제도라고 비판한다.
“1990년 공산주의의 붕괴가 ‘정치적 유토피아가 어떻게 전체주의적 공포로 끝나는지’ 혹독하게 가르쳐 줬다면, 그 다음 10년은 ‘역사의 종말’로 상징되는 세계적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라는 유토피아의 지배기였고, 9·11은 그 유토피아의 종말을 가리킨다.”
흥미로운 사실은 폴란드 이민자 출신의 브레진스키와 지제크가 같은 동유럽 출신이라는 점이다. 누구의 말에 더 귀 기울이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세계질서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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